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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능한 사랑’의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상상은 현실을 이길 수 없다.”
21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문학적 감수성, 깊은 통찰 그리고 자기 성찰을 통해 ‘리얼리티(현실)의 힘’을 증명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대기업의 대규모 해고 사태를 모티브로 부유한 남편 상우(조인성)와 그의 아내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가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의 이야기를 담는 과정을 그렸다.
예지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기로 가까워지는 네 명의 인물을 통해 이 감독은 경제적 계급이 어떻게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인간 관계를 규정하는지에 대한 복합적 층위를 특유의 문학적 리얼리즘으로 재현했다. 대기업에서 용접공 정규직으로 근무하며 평범하지만 작은 행복을 느끼고 살던 호석은 해고 이후 경제력뿐 아니라 자아 자체를 잃어버린 빈껍데기 상태가 되자 깊이 좌절한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그러나 영화는 호석의 고통이 아닌 그의 아내 미옥을 전면에 내세우고 예지가 미옥의 시선을 따라가는 선택을 한다. 이는 이 감독이 말한 ‘노동 종말 시대’의 강력한 은유라는 분석이다. 해고 노동자인 호석이 주인공이지만 호석은 상당 시간 동안 마치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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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노동자의 존재의 소멸을 ‘투명인간’처럼 존재하는 호석을 통해 재현했다는 분석이다.
시사회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설경구는 “호석은 형편이 넉넉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는 일을 하면서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작은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는 인물”이라며 “해고를 당한 이후 자아가 완전히 깨진 상태에서 수치심, 죄책감,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면서 열등감을 느끼고, 뭔가 위축되는 상태, 상우 부부를 만나면서 거부감 같은 것도 들었을 인물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영화 속에서 호석을 비롯해 해고 노동자들이 심리치료를 받는 장면은 이 감독이 가장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심리치료를 거부하던 호석이 ‘죽은 자’(해고된 노동자)들과 파업을 하고 해고를 당하면서 받았던 상처와 수치심, 절망감을 풀어내는 장면은 특히 다큐멘터리의 힘을 다시금 확인시킨다는 평가다.
호석은 처음에는 다큐멘터리 촬영도, 심리치료도 완강히 거부한다. 하지만 우연히 빵집에서 과거 직장 동료를 마주쳤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내적 갈등과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어렵게 시작한 심리치료에서 미옥은 그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호석 자신도 정리해 꺼내 보일 수 없는 심리적 트라우마가 그의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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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자신의 고통을 마주한 호석은 예지·상우 부부가 제안한 자신들의 별장 초대에 응하면서 영화는 다른 국면으로 진입한다. 바로 네 사람이 상우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기로 하면서부터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호석이었지만 미옥의 이야기에도 흥미를 느낀 예지. 어린 시절, 연애 이야기 등등 시시콜콜한 것들을 공유하며 둘은 깊이 친해진다. 별장 휴가에서는 이들을 구분하는 계급이 어디에서 비롯됐으며 어떠한 모습인지가 드러난다. 이 장면에서 격렬하고 노골적이라기보다는 이 감독 특유의 문학적이고 사색적인 연출로 영화가 가진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는 평가다.
미옥은 영화 내내 순수하고 맑은 얼굴로 연애 시절부터 호석의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꾸밈없이 털어놓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상경해서 공장 일을 하고 여전히 고된 일을 하는 마흔네 살의 미옥은 무해하고 순수하다. 해고와 함께 자아까지 상실한 남편과 달리 단단하다. 미옥이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자 화자로 보인다. 전도연은 미옥에 대해 “돈과 계급은 사람의 가치관을 무너뜨릴 수 있고 사람의 가치를 앗아갈 수 있지만 그런데 미옥은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는 인물”이라며 “결국 가치관이 문제인데, 미옥은 자신의 가치와 가족의 가치를 돈과 계급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키는 인물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의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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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노동자, 노동 종말 시대, 경제 계급 등 묵직한 화두를 던지지만 열여섯 미옥과 열여덟 호석이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설레는 연애 시절, 결혼 생활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도 아련한 문학소설처럼 그려냈다. 특히 미옥과 호석이 달을 바라보는 장면은 스크린에 재현된 가장 아름다운 문학적 성취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에는 10년 전부터 준비하다 포기했던 감독의 고뇌와 자기 성찰이 오롯이 담겨 있는데 마치 윤동주의 ‘참회록’을 떠올리게 한다. 계급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작품에 담을 수 있는지, 작품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 감독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준비하다 접은 이유가 과연 이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이 내게 있나라는 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며 “시간이 지나고 노동의 근본적인 시각 자체에 대한 변화가 왔고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이야기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리적 문제 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를 생각했다”며 “타인의 삶을 영화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전했다.
감독은 이들 네 명의 인물을 통해 다양하고 복잡한 층위로 만들어진 계급과 정체성을 떠나 우리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지 묵직하고 뻐근한 질문을 던진다. “정말 사랑하는 마음,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사랑하려고 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년 관람 불가, 23일 극장 개봉, 11월 6일 넷플릭스 공개.
어떻게 인간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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