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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양구의 ‘SF 사고실험실’ 『삼국지연의』는 20세기 후반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많이 읽힌 동양 고전이다. 그림은 『삼국지연의』 삽화로 조조가 유비를 초대해 천하에 영웅이라 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대화하는 장면. [사진 위키백과] 영화 관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그리스 고전 『오디세이아』를 향한 열광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 성공을 계기로 서양은 물론, 동양 고전을 재해석한 콘텐트가 한층 쏟아질 전망이다. 당장 떠오르는 동양 고전만 꼽아도 『서유기』 『수호전』 같은 판타지부터 『삼국지연의』 『초한지』 같은 군담(軍談) 소설까지 무궁무진하다. 도전적인 성공 사례는 이미 있다. 1988년 만화 연재를 시작해 19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끈 허영만 화백의 ‘날아라 슈퍼보드’는 어떤가. 『서유기』의 손오공과 그 일행의 모험을 이토록 익살스러우면서도 나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판타지는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로 시야를 넓혀도 찾아보기 어렵다.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 『서유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허영만 화백의 만화가 원작이다. [사진 KBS 옛날티비 유튜브 캡처] 고전 판타지 『전우치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최동훈 감독과 강동원 배우가 의기투합한 영화 ‘전우치’(2009)도 있다. 조선과 현대를 오가는 도사 전우치의 활약은 전공 논문이나 국어 교과서에 박제되어 있던 고전 소설이 어떻게 새로운 서사로 다시 발굴될 수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사고 실험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해 내는 SF 장르가 이런 매력적인 시도를 놓칠 리 없다. 『삼국지연의』 『초한지』 같은 군담 소설의 세계관을 SF로 가져온다고 상상해 보라. 중원이 아니라 우주 공간을 무대로 피 튀기는 전쟁이 벌어지고, 가상의 대륙을 무대로 제국의 주도권을 뺏고 빼앗는 경쟁을 펼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본보기 두 작품이 있다.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 고전 서유기 재해석 중국 한나라 몰락 이후 위·촉·오 세 나라가 제국의 패권을 놓고서 경합을 벌이는 과정을 촉의 유비-관우-장비 의형제와 책사 제갈량의 관。에서 그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20세기 후반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많이 읽힌 동양 고전이다. 바다신2 게임 일본에서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1948)가 있고, 한국에서는 박종화와 이문열의 『삼국지』가 있다(각각 1968년과 1988년에 발간). 다나카 요시키의 SF소설 『은하영웅전설』. 고전 『삼국지』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사진 교보문고] 하지만 1980년대 이후라면 요시카와 에이지나 이문열의 작품만큼이나, 아니 세대에 따라서는 그 이상 읽힌 책이 있다. 바로 일본 작가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이다. 일본에서는 1982년부터 1987년까지 거의 5년에 걸쳐서 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1991년 처음 번역이 되었다. 비공식 집계로는 일본에서 누적 1500만 부, 한국에서 100만 부가 팔렸다. 팬덤 사이에서 흔히 ‘은영전’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오랫동안 평화를 누리던 은하연방(한)이 멸망하고 차례로 등장한 세 주요 세력 은하제국(위), 자유행성동맹(촉), 페잔 자치령(오) 사이의 경쟁을 그린 소설이다. 대립 구도만 놓고 봐도 저자가 『삼국지』를 염두에 뒀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외전을 제외한 정전만 10권 분량의 이 작품은 『삼국지』의 제갈량을 연상시키는 자유행성동맹을 이끄는 명장 양 웬리와 은하제국의 야심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각각 우주 함대를 이끌고 벌이는 경쟁이 큰 줄기다. 양 웬리와 자유행성동맹은 민주공화정의 대의를 옹호하고, 라인하르트와 은하제국은 제국 통일을 내세우며 대립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삼국지』뿐만 아니라 동서양 역사에서 끌어올 수 있는 소재를 총망라해서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한다. 정치 체제의 대립, 지도자의 리더십, 정책 결정의 우선순위, 전쟁과 반란, 음모와 배신, 보수와 진보 사상의 경쟁 위에서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를 중심으로 숱한 인물이 떠오르고 스러진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10대를 보낸 이들 중에는 『은하영웅전설』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배웠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 이전 세대가 『삼국지』를 읽으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은하영웅전설』이 그만한 깊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재미만 놓고 보면 『삼국지』보다 한 표 더 주고 싶다. 『삼국지』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는 서사가 『초한지』이다 인터넷릴게임 .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 진나라가 멸망하고 나서 훗날 (앞에서 결국 몰락할 제국) 한나라의 초대 황제가 된 유방과 그와 제국의 패권을 두고 경쟁했던 초나라 항우의 경쟁. 토사구팽 고사의 주인공인 유방의 칼이었던 명장 한신과 끝까지 항우 곁을 지킨 연인 우미인 등이 얽혀들며 거대한 역사의 드라마를 빚어낸다. 켄 리우의 소설 『민들레 왕조 연대기』는 『초한지』의 세계관을 정교한 SF로 구현했다. [사진 교보문고] 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가 바로 이 『초한지』의 세계관을 정교한 SF로 다시 썼다. 2015년부터 나와서 2022년에 네 권으로 완결된 ‘민들레 왕조 연대기’이다. 국내에서는 유방과 항우의 경쟁을 그린 『제왕의 위엄』을 시작으로 『폭풍의 벽』이 나왔고, 나머지 두 권도 차례로 소개될 예정이다. 『초한지』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가져다가 SF 덧칠만 한 작품으로 지레짐작해서는 곤란하다. 켄 리우는 서양 SF의 전유물이던 차가운 강철과 톱니바퀴 대신, 우리에게 친숙한 동아시아적 소재를 과학기술로 탈바꿈시켰다. 작가가 실크펑크(silkpunk)라고 부르는 이 세계에서는 거대한 전투 연이 하늘을 뒤덮고, 고래를 닮은 잠수정이 바다를 가르며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뒤바꾼다. 이런 새로운 기술은 낡은 신분과 성별의 벽을 무너뜨리는 무기가 된다. 쿠니 가루(유방)와 마타 진두(항우)의 대립을 중심에 두되, 기술의 발전을 발판 삼아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엔지니어 루안 지아(책사 장량)나 가부장제의 제약을 깬 여성 전사 긴 마조티(한신)가 역사의 전면에 나서도록 핵심 인물의 성별과 역할을 과감하게 바꿨다. 쿠니 가루가 민들레 왕조를 열고 나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폭풍의 벽』은 더욱더 흥미진진하다. 유방의 아내 여후는 남편의 성공과 신생 왕조의 기틀을 위해 궁정의 음모를 능동적으로 설계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그와 후계 구도를 놓고 겨루는 리사나 부인(척부인)도 존재감이 커진다. 일등 공신 긴 마조티가 맞는 최후는 토사구팽의 고사를 재해석해서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1976년 중국 간쑤성에서 태어나 열한 살에 미국으로 간 켄 리우는 『제왕의 위엄』을 “한(漢) 왕조의 위대한 영웅들을 내게 소개해 주신 할머니”에게 바쳤다. 황금성게임다운로드후기 이 소설을 쓰게 된 최초의 계기는 중국에서 어린 시절 오후에 할머니와 함께 듣던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한 『초한지』였다. 영화 전우치는 동명의 고전서 모티브 『삼국지』와 『은하영웅전설』 중에 무엇을 읽는 게 나을까. 원전 읽기가 유행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자면 나는 후자다. 특히 10대와 20대에게 권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삼국지』는 매정하게 해석하자면, 몰락한 권력을 복원하고자 혈통을 강조하면서 나선 영웅들의 활약이다. 그들이 숭상하는 ‘의(義)’는 ‘의리’를 강조하는 저잣거리 건달의 세계관과 멀지 않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은 그 자리를 민주공화정으로 대체했다. 『삼국지』의 근간이 되는 『삼국지연의』가 14세기 후반에 등장했으니, 약 600년의 시간차가 만들어낸 해석의 차이다. 『삼국지』의 재미는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 맥락은 현재적으로 비튼 『은하영웅전설』이 오히려 돋보이는 이유다. 켄 리우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패권 경쟁과 권력 투쟁의 본질은 놓치지 않는다. 더해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과학기술이라는 변수를 창의적으로 부각하고, 전쟁터에서 여전사가 활약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10대나 20대 때 ‘민들레 왕조 연대기’로 『초한지』의 세계관을 접했다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켄 리우는 21세기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단편집 『종이 동물원』(황금가지)을 읽고 나면 SF를 대하는 시선이 한층 넓어질 것이다. 리우는 역량 있는 아시아 작가의 SF를 영미권에 소개하는 탁월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어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류츠신의 『삼체』도 그가 소개한 작품이다. 오랜 세월 영미권에서 비공식 번역으로만 유통되던 『은하영웅전설』은 2016년부터 2019년에 걸쳐 영어판 10권이 정식 완간되었다. 국내에서의 인기는 과거 열풍에 비해 다소 잔잔해졌지만, 영미권에서는 도리어 입소문을 타고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는 중이다. 21세기에도 오랫동안 읽힐 SF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준비를 마친 셈이다. 강양구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23년 넘게 기자로 일하면서 과학기술·보건의료·환경 분야를 취재했다. SF를 거울 삼아 정치·사회·경제·문화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문제를 들여다본다.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과학의 품격』 등을 지었다. 읽는 게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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