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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신앙은 한국 교회사의 두 갈래가 만나 이뤄졌다. 백석학원과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교단 설립자 장종현 목사는 30일 펴낸 회고록 ‘무릎 꿇고 받은 사명’에서 이렇게 밝혔다. “청소년기의 부흥회 체험으로 몸에는 감리교의 뜨거운 영성이 흐르고 있었고, 머리는 대한신학교에서 배운 정통 개혁주의 신학으로 무장돼 있었다. 대한복음신학교(현 백석대)는 이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었다.” 성거산의 학생 부흥회 장종현 목사는 중학교 3학년이던 1965년 무렵 처음 교회에 나갔다. 학교에서 가까운 충남 천안 봉명동교회였다. 30대 초반 김영철 목사의 열정적 설교와 기도에 감복했다. 이듬해 학생회장이 된 그는 친구들과 함께 김 목사를 졸랐다. “목사님, 우리도 부흥회 해요!” 인근 성거산에서 김 목사의 영적 스승인 이강산 목사가 천막 부흥회를 열고 있었다. 김 목사는 학생 20여명을 데리고 그 산으로 올라 직접 부흥회를 인도했다. 학생들은 천막을 들쳐 메고 산을 오갔다. 어둠이 내리면 등불을 밝히고 며칠씩 말씀을 듣고 기도했다. 김 목사의 아내 김순악 사모는 30일 충남 천안 백석대에서 열린 ‘백석학원 설립 50주년 기념대회’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학생들이 참 귀엽고 예뻤다”면서 “뭐라도 먹여주고 싶었지만 우거짓국밖에 끓여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바다이야기 다운로드 . 김 목사의 설교는 단순하고 날카로웠다. ‘육은 죽이고 영을 살리라.’ 육신의 욕망을 버리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교회 성장을 약속하는 말을 경계했다.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강조했다. 학생 부흥회 마지막 날, 통성기도를 하던 학생들이 울며 죄를 고백했다. 장종현은 무릎을 꿇고 목사가 되겠다고 기도했다. 함께했던 소년들 가운데 12명이 훗날 목사가 됐다. 이강산 목사는 1930년대 신비주의 부흥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용도 목사와 협성신학교 동기였다. 이용도 목사는 일제강。기의 절망 속에서 회개와 자기 부인을 외친 인물이다. 그 영성이 이강산과 김영철을 거쳐 고교생 장종현에게 닿았다. 김영철 목사는 어머니를 일찍 여읜 상실감과 허무감에서 방황하던 중 하나님을 만났다. 그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깊은 기도를 드렸고 40일 금식기도도 세 번이나 시도했다. 말씀이 살아서 생명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서울신학교(현 서울신학대)에서 공부하고 감리교회에서 안수를 받았다. 서울신학교에서 이명직 목사의 중생·성결·신유·재림의 ‘4중 복음’으로 신학적 틀을 세웠다 모바일 바다이야기 5만 . 장종현은 김영철 목사를 영적 스승으로 모시며 지금도 봄가을로 그의 묘소를 찾는다. 신학교에서 만난 또 다른 스승들 청년 장종현은 감리교가 아니라 장로교 계통인 대한신학교에 들어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단국대 영문과에 다니던 그의 자취방에서 가까웠고, 마침 야간 신학 과정이 있었다. 장종현은 그곳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배우며 ‘이보다 더 좋은 신학은 없다’고 할 만큼 확신을 얻었다. 대한신학교는 48년 김치선 박사가 세웠다. 김 박사는 신학적 자유주의에 반대하면서 성경의 권위와 복음 전도를 강조했다. 학교 역시 경건한 목회자와 전도자를 양성하는 데 힘썼다. 김 박사는 3·1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탄압을 피해 캐나다 선교사를 따라 일본 고베에 가서 한인 목회를 하며 민족애가 담긴 설교를 했다. 고베중앙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댈러스신학교에서 수학했다. 해방 후 귀국해 남대문교회에서 목회하며 대한신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친 최순직과 김준삼 교수가 장종현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두 사람은 일본 고베개혁파신학교에서 오카다 미노루에게 배웠다. 오카다는 일제가 궁성요배(宮城遙拜·일왕의 궁을 향해 절함)를 요구하자 신학교 문을 닫은 인물이다. 모바일 바다이야기 상어 그의 신학은 미국 장로교 전통과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주의에 닿는다. “사람에게 손 벌리지 마라” 76년 여름, 스물아홉 살 장종현 전도사는 김영철 목사를 찾아갔다. 신학교를 시작하겠다며 허락을 구했다. 김 목사는 반대했다. “이미 신학교가 많은데 왜 또 신학교를 세우느냐. 먹고살려고 학교를 하려는 거냐.” 장종현은 김 목사의 허락을 꼭 받고 싶었다. 세 번째 찾아갔을 때 김순악 사모가 도와줬다. “저렇게 간절히 주의 일을 하겠다는데 매정하게 하지 마세요.” 김 목사는 마침내 허락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신학교를 하려면 절대로 사람에게 손 벌리지 마라. 하나님만 바라보고 해라.” 그해 11월 1일, 서울역 인근 9.9㎡(3평)짜리 사무실에 대한복음신학교의 간판이 내걸렸다. 학교는 이듬해 ‘통신 신학생 모집’ 신문 광고를 냈다. “본교는 그리스도의 뜻을 본받아 초교파적으로 크리스천의 재무장 교육과 새로운 수련 교육으로 환경·경제·지역·연령·학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정에서 공부할 수 있는 신학교입니다.” 당시는 한국교회가 빠르게 부흥하던 시기였다. 광고 문안에는 넘치는 복음 전도의 열정을 신학 교육으로 키워 가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81년에는 대한신학교의 스승 최순직·김준삼 목사가 제자의 학교에 합류했다. 뜨거운 부흥의 영성과 정통 개혁주의 신학, 두 물줄기가 여기서 이렇게 만났다. 이용도 목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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