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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시대의 현실을 드러내고 광고는 당대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고통과 억압에도 삶을 살아내는 모습이 거기에 있습니다. 100년 전 삶의 현장을 1920~30년대 근대 문학과 당시 신문 광고를 통해 읽습니다.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4> 강경애 소설 ‘어머니와 딸’의 향기 비누
소설가 강경애(1906~1943).
1931년 강경애(1906~1943)가 쓴 ‘어머니와 딸’은 작가의 첫 페미니즘 장편소설이다. 도쿄 유학 다녀온 남편은 신여성과 사랑에 빠져 이혼을 요구한다. 구식 아내 옥이는 가정을 지키려 노력한다.
남편의 말을 외우고 있던 그는 저녁 먹기 전에 새로 사온 향내 나는 비누로 말끔히 얼굴을 씻은 후 곱게곱게 단장을 하고 저녁상을 받았다.
“분도 좀 바르라”는 남편의 말을 들은 옥이가 몸 단장을 하는 장면이다. ‘향내 나는 비누’는 남편에게 잘 보이려는 아내의 수동적인 몸부림을 보여주는 소재로 등장한다.
당시 신문에는 비누 광고가 자주 실렸다. 현재 일본 생활용품 대기업 카오(花王)가 당시 출시한 ‘화왕 비누’가 대표적이다. 광고에는 비누를 뜻하는 일본어 셋켄(石鹸·석감)을 붙여 한자로 ‘花王石鹸’을 쓰고 아래에 한글을 작은 글자로 병기했다. 우리말과 일본어 발음을 섞어 ‘가오 섹겡’ ‘가오 셋겡’ ‘가오 비누’ ‘화왕 비누’를 혼용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화왕 비누’ 표기가 자리를 잡는다.
화왕 비누는 “아무리 살결이 사나운 분이라도/ 비단고름 같이 고운 부인이나 어린아이들이라도 순수 무자극의 이 비누면 대안심”(1930년 1월 15일 석간 5면)이라고 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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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얼굴을 한 초승달 상표를 내걸고 “동양 제일” “세계 최고의 순수도” “이것 이상의 石鹸은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 광고는 조선 여성을 본격 겨냥했다. 치마 저고리 입은 조선 여성 캐릭터 그림을 싣고 “항상 피부 위생과 가정 경제에 유의하시는 근대 부인 여러분께서는 모두 花王石鹸을 사용하십니다”(1936년 6월 10일 석간 6면)라는 문구를 달았다.
조선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화왕 비누 광고. 1936년 6월 10일 석간 6면.
경쟁 제품은 여럿 있었다. 가정(家庭)이라는 뜻의 가테이 비누도 조선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웠다. “피부의 보호에 적당하도록 만든 순량제일(純良第一)의 가테이 비누를 사용하시면 절대로 피부는 거칠지 아니합니다”(1930년 2월 16일 석간 6면)라고 광고했다.
가테이 비누는 현재 ‘클럽 코스메틱스’라는 이름으로 영업 중인 일본 화장품 기업 구라부(클럽) 제품이다. 이 회사는 ‘구라부 비누’도 출시했다. “살결이 아니 트고 거품도 잘 일며 쓰는 기분도 상쾌한 이상(理想)의 비누”(1932년 5월 30일 석간 4면)라고 선전했다.
“향기 비누”라고 강조한 미소노(御園)는 인기 여배우를 모델로 내세웠다. 1931년 일본 영화 ‘미인애수(美人哀愁)’에 출연한 16세 네덜란드 혼혈 배우 이노우에 유키코가 광고 모델이었다. 당시 모던 걸의 아이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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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거품 100%, 상품(上品)의 향료(香料) 100%, 값은 단돈 15전 염가 100%” “만족도 300%?!”(1931년 3월 15일 석간 4면)라고 카피를 뽑았다. 사각 철 용기에 비누 6개를 담은 90전짜리 선물용도 출시했다.
일본 여배우 이노우에 유키코를 내세운 미소노 비누 광고. 1931년 3월 15일 석간 4면.
비누 시장 경쟁은 치열했다. 오사카에 본사를 둔 비누 제조사 교신샤(共進舍)는 젖소 로고를 단 ‘우유(牛乳) 비누’를 내놓았다. “별 같이 많은 가운데 찾게 된 ‘우유’야 말로 명실 공히 제1위!”(1934년 9월 20일 조간 4면)라고 광고했다. “우유 비누의 우수한 본질, 특장, 혹은 사용 후의 감상 등”에 관한 표어를 현상 모집하며 마케팅에 나섰다. 가격보다 품질을 내세우고 “고급 화장 비누는 결코 사치품이 아니다!”(1937년 3월 10일 석간 5면)라고 강조했다.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資生堂)도 고급 비누 경쟁에 뛰어들었다. 비누를 뜻하는 프랑스어 ‘사봉(Savon)’을 광고 문구에 쓰며 고급 이미지를 내세웠다. “중원(中元·8월 대보름)에는 어여쁜 상자에 넣은 귀중한 샤봉이 제일입니다.”(1937년 8월 10일 6면)
이밖에도 ‘호시[星]’ ‘베루벳도’ ‘미노루’ ‘스메쓰’ ‘미쓰와’ ‘미활(美活)’ ‘송택(松澤) 호산’ 이름을 단 비누 광고가 지면에 실렸다.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최소 12종에 이르는 일본 회사 비누가 팔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인이 만든 비누는 주로 세탁 비누였다.
황금성pc버전
황해도 사리원 금강화학공업이 만든 세탁 비누 ‘금강’ ‘복수(福壽)’ ‘삼천리’가 잘 팔린다(1931년 9월 12일 석간 6면)는 기사가 있다. 조선물산장려 바자회에 부국(富國)상회, 공성(共成)상회 등이 만든 세탁비누가 나왔다. 조선인이 운영하는 25개 세탁 비누 공장이 조합을 결성(1933년 2월 7일 석간 8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용(세수) 비누는 품질과 마케팅에서 대항할 정도가 되지 못했다. 당시 지면에서 조선인이 제조한 미용 비누 광고는 찾기 어렵다.
비누는 일반 대중에 광범위하게 보급됐다. 가격은 15~25전 수준이었다. 싼 값은 아니었다. 1931년 대중 월간지 정가가 20전, 설렁탕이 15~20전이었다. 시세이도 고급 비누는 50전짜리도 있었다.
신문에는 비누 관련 실용 기사도 뒤따랐다. ‘어떠한 것이 좋은 비누냐’(1925년 8월 2일 조간 3면), ‘쓰고 남은 비누를 또다시 이용하는 법’(1930년 10월 15일 석간 5면), ‘비누는 이런 것이 좋다’(1937년 6월 24일 석간 4면) 등이다.
일본이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으로 달려가면서 식민지 조선에서 비누도 다른 생활용품과 마찬가지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 됐다. ‘비누를 경제 되게 쓰는 법’(1938년 4월 29일 석간 4면) 같은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채만식의 1937년 중편 ‘정거장 근처’는 남편 덕쇠가 아내 이쁜이를 술장수 춘삼에게 100원에 팔아넘기는 모습을 그린다. 이쁜이는 팔려가는 날 세수하다가 “왜비누는 구경한지 오래고 녹두비누라도 있으면 했으나 그도 써본지 오래다”라고 되뇌인다. 가난한 이쁜이조차 한때 ‘왜(일본)비누’로 세수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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