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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7일을 시작으로 전 세계는 캅카스 산맥에서 전쟁의 미래를 힐끗 엿보았다. 동틀 녘, 아르메니아 군인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분쟁 지역을 지키기 위해 깊게 판 참호와 전투 진지 안에 들어가 있었다. 군인들은 황량한 고산 평원과 소나무로 뒤덮인 산자락을 주의 깊게 살피며 적을 기다렸다. 아르메니아는 이웃 나라 아제르바이잔과 장장 6년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해 이 지역을 장악했다. 아르메니아 수비대는 자신만만했다. 험준한 지형은 방어에 유리했다. 충분한 규모의 아르메니아 전차들이 흙으로 쌓은 장애물 뒤편에 방어선을 단단히 구축하고 있었다. 수십 개의 이동식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이 강력한 레이더로 무장한 채 방어선을 지키고 있었다.’
조지 M. 도허티가 쓴 ‘AI시대, 전쟁의 미래’에 소개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투 시작 이전의 상황이다. 소련이 붕괴된 뒤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6년여에 걸친 전쟁 끝에 이 지역을 장악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 땅을 되찾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아르메니아는 전투에 대한 각오도 충만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 아제르바이잔의 완승. 나고르노-카라바흐 전투의 의미는 무인항공기(드론)가 현대전의 판도를 바꾼 ‘게임체인저’로 등장한 첫 전쟁이라는 데 있다. 현대전의 첫 주역은 당연히 미국이 될 것이라는 통념을 깬 것이다.
양국의 지상군 규모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전략과 전술, 그에 따른 무기 체계의 변화가 승패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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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는 20여년 전의 승리에 취해 과거 전술을 유지하고 있었다. 옛소련 시절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기갑전력과 지상 방공망에 의존했다. ‘AI시대, 전쟁의 미래’, ‘드론이 여는 미래의 전쟁(김현종 저)’, ‘넥스트 워(존 앤털 저)’ 등 여러 전쟁 관련 자료와 논문 등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은 절치부심했다.
아르메니아, 전통적 기갑 전술 등 답습
아르메니아가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미래전을 대비했다. 드론을 비롯한 첨단무기를 준비했고, 그에 걸맞은 전략과 전술을 개발했다. 기술과 전술 역량에서 아르메니아를 압도한 것이다. 이후 우크라이나·이란 전쟁에서 드론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에 비해 규모가 작은 전쟁이라서 그런지 당시 나고르노-카라바흐 전투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전쟁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제르바이잔이 동원한 드론은 튀르키예의 ‘바이락타르 TB-2’와 자폭드론 ‘STM 카르구’, 이스라엘의 자폭드론 ‘하롭’ 등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은 구식무기를 미끼로 활용했다. 아르메니아 방공레이더망은 적의 전투기가 접근하는 것을 포착한 뒤 지대공미사일을 발사해 요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레이더에 걸린 물체는 전투기가 아닌 옛소련 시절의 구식 복엽기였다. 아제르바이잔군이 이를 드론으로 개조해 레이더가 전투기로 오인하게 한 것이다. 아르메니아군의 방공망을 유인·소모시키는 기만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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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군이 이 복엽기를 추적하는 동안 아제르바이잔 군집드론은 상공에서 대기하다 방공레이더들을 타격했다. 아르메니아 방공망이 소형드론을 제대로 탐지하지 못하는 것을 간파한 전술이다. 30여대의 드론이 한꺼번에 나타나자 아르메이나군은 손을 쓸 틈도 없이 당했다. TB-2는 유도폭탄으로 아르메니아군의 방공망과 전차, 장갑차, 포병 진지, 방공 시스템을 괴멸시켰다. 하롭은 아르메니아군의 레이더, 방공미사일을 들이받고 파괴했다.
정찰드론이 고해상도 카메라 등으로 좌표를 전송하면 지상요원들이 아르메니아 방공차량을 식별한 뒤 TB-2에 장착된 소형 레이저유도미사일로 공격했다. 2주 만에 파괴된 아르메니아 방공 시스템은 60여기에 달했다. 방공망이 무너지자 아제르바이잔 드론들은 무방비 상태의 아르메니아 전차와 포·군용차량들을 격파해나갔다. 군집 TB-2는 참호에 숨어 있는 아르메니아 보병들을 레이저유도폭탄으로 정확하게 공격했다.
전쟁 초기에는 TB-2로 아르메니아 전차 114대, 장갑차 42대, 다연장포 141문 등을 파괴했다. 전체 전쟁 기간인 44일간 아르메니아 전차 150대가량이 파괴되는 등 기갑전력 대부분이 무력화됐다. 아르메니아는 제대로 된 대응 한 번을 못했다. 다른 무기 시스템들도 초토화됐으며, 아르메니아군 사상자는 수천명에 달했다.
아제르바이잔은 고도의 심리전도 펼쳤다. 드론 카메라로 적 장비와 병력이 파괴되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면서다. 전 세계에 드론의 위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이를 본 아르메니아군과 국민에게 공포를 느끼게 해 사기를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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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심리전으로 아제르바이잔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 심리전은 여론전에서도 효과를 크게 발휘했다. 아르메니아가 은폐하고 있던 진지와 참호, 보급로, 이동 중인 전차와 군용차량 등은 아제르바이잔의 정밀드론 공격의 표적이 됐다. 위장막을 쳐도 24시간 쉬지 않는 드론의 눈은 피하지 못했다. 전통적인 은폐 전술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투를 지켜본 여러 국가들은 전쟁 양상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우선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하는 전투기나 전차, 방공망이 드론의 소형 유도폭탄에 속절없이 당하는 것을 보고 기존 전술, 전략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방공망도 전투기나 미사일 등 고고도 위주가 아니라 저고도로 날아오는 드론에 취약성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드론 방어체계와 소형 레이더, 전자전 장비 및 레이저 개발이 본격적으로 물살을 탔다.
각국은 드론 등 첨단 무인 체계와 기존 재래식 유인전투 체계를 통합해 시너지를 내는 유무인복합 전투 체계 구현에 나섰다. 아제르바이잔이 무인기로 개조한 An-2를 투입해 아르메니아군이 온통 이쪽 방어에 집중하는 사이 드론과 포병, 다연장 로켓포 등의 연합 공격무기들이 아르메니아 공격 목표들을 타격하는 식이다. 드론과 기존 미사일, 방사포 등 섞어쏘기 공격에 대비해 정찰자산과 지휘통제, 무기 체계를 그물처럼 연결해 표적 탐지부터 타격까지의 시간을 단축하는 ‘킬웹(kill web)’ 개념도 구체화되고 있다. (19회에 계속)
홍영식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전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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