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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회원국 중 물가상승률(29.7%)과 기준금리(연 36%) 모두 압도적 1위인 나라, 튀르키예. 살인적인 물가 탓에 서민들은 고통에 시달리지만, 고금리를 노린 해외 투자(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몰려든 덕분에 거시경제는 제법 버텨왔는데요.
이런 튀르키예 경제에 충격을 안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측근과 고위 관료까지 연루된 대형 폰지사기 스캔들이죠. 시장 신뢰가 깨지면서 캐리 트레이드라는 모래성도 흔들리는데요. 심상찮은 조짐의 튀르키예 경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튀르키예의 최고액권 지폐인 200리라는 2009년 처음 나왔을 때 130달러짜리 지폐였지만, 이제 가치가 4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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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값이 왜 이래?
“제 뒤에 있는 카페의 커피는 335리라, 즉 7.38달러인데, 스웨덴 스톡홀름의 비슷한 카페에서 같은 크기 아이스아메리카노는 5.26달러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튀르키예 물가는 오르기만 한다는 거죠. 구글 지도로 여행 전 가격을 확인하는 사람이라면, 이스탄불에선 사진 날짜를 확인하세요. 사진이 올라온 이후 가격이 두 배로 올랐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넉 달 전 한 미국인 여행 유튜버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이런 영상을 올렸더군요.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까, 역시나. 현재 시. 그 카페의 아이스아메리카노 가격은 415리라(약 8.29달러, 1만1150원). 4개월 만에 24%나 뛰었습니다. 튀르키예의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을 실감할 수 있는데요.
9월 기준 주요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 비교 표. 튀르키예보다 높은 나라는 OECD 회원국이 아닌 베네수엘라, 이란, 수단, 아르헨티나 정도다. 자료: TEPAV(튀르키예 경제정책연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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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튀르키예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29.77%.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만든 독립조사기관 ENAG의 추정치는 45.12%입니다. 뭐가 됐든, OECD 38개 회원국 중 단연 1위인 건 틀림없죠.
왜 이 나라 인플레이션이 이 지경이 됐느냐. 긴 얘기이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2021년 말~2023년 초, 연임을 노린 에르도안 대통령이 ‘고금리가 물가상승의 원인’이란 비상식적 주장을 펼치며 기준금리를 대폭 끌어내렸고요(19→8.5%). 그 결과 물가 상승률이 무려 85.5%(2022년 10월)까지 치솟으며 난리가 났죠.
2023년 5월 에르도안 대통령의 연임 성공 직후.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180도 방향을 틀어서 기준금리를 50%까지 끌어올리는 긴축에 나섰는데요. 하지만 ‘물가는 계속 오를 것’이란 믿음(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이 이미 자리 잡은 뒤였고요. 여기에 정부의 방만한 재정(은퇴자 연금 확대 등 돈 풀기)까지 겹치면서 고물가가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가가 폭등하면→리라화 가치가 급락하고(환율 급등)→외국인 투자자가 탈출하는 게 일반적인데요. 얼마 전까지 튀르키예는 그 반대였어요. 오히려 수백억 달러의 해외 투자자금이 마구 밀려들었죠. 왜 그랬을까요.
고금리와 환율 왜곡, 두 가지가 결합하면서 외국인 단기 투기꾼들이 활개치기 딱 좋은 여건이 조성됐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미국·유럽에서 연 4~5%대 금리로 달러를 빌려서 튀르키예 리라화로 바꾼 뒤 연 40%대 수익률을 챙길 수 있는 머니마켓 펀드나 외환 파생상품에 투자했어요.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이죠.
최근 5년간 튀르키예 리라화 환율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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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말 달러당 10리라였던 환율이 이제 50리라까지 뛰었다. 최근 들어 환율 상승 곡선이 튀지 않고 자로 잰 듯한 일직선을 그리고 있다는 건 그만큼 중앙은행이 인위적인 개입으로 환율 상승 속도를 통제하고 있단 뜻이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아니, 그러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 그들도 큰 손해를 입지 않냐고요? 이론적으론 그렇겠지만, 실제론 아니었어요. 튀르키예는 변동환율제를 표방하지만, 사실 중앙은행이 환율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거든요. 올 상반기까진 리라화 하락 속도를 ‘월 1.2~1.5%’가 되도록 조절해 왔죠. 그래서 연 15~18% 수준의 통화가치 하락을 감안해도, 투기꾼들이 캐리트레이드로 연 20% 수준 마진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었던 거죠.
비록 튀르키예 경제 성장에 도움 되는 장기투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어쨌든 이런 투자금 유입 덕분에 리라화 가치 하락에도 튀르키예 외환보유고는 안정적으로 유지됐고요. 국민들이 치솟는 물가 때문에 아우성치는 상황에서도 외환위기라는 파국은 피할 수 있었죠. 그런데 이 고금리로 지탱해 온 모래성 같은 외환보유고를 흔들 수 있는 지진이 발생했으니. 튀르키예의 폰지 스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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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zi. 나중에 투자한 사람 돈으로 앞사람 수익을 챙겨주는 돌려막기식 금융사기 수법을 일컫는 용어이죠. 1920년대 미국의 금융사기꾼 찰스 폰지 이름에서 유래했는데요.
지난 9월 터진 튀르키예 폰지 스캔들은 철자가 좀 다릅니다. Fonzi라고 쓰죠. 펀드(Fund)와 폰지(Ponzi) 사기의 합성어이거든요.
튀르키예의 놀라운 주가 상승과 주식 투자 붐은 2년 반쯤 전에도 전해드린 적 있습니다(2024년 3월 딥다이브 튀르키예 증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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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물가로부터 내 자산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주식 투자 열풍을 일으켰고, 특히 대형 우량주가 아닌 중소형주가 상승장을 주도한다는 이야기였죠. 그때도 너무 위험해 보인다는 우려가 컸는데요.
하지만 튀르키예 증시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올랐고요. 올해 5월엔 1만5000선마저 돌파하며 거품이 절정을 이뤘는데요. 그런데 지난 8월, 규제당국이 빼든 옐로카드 한 장에 거품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펀드 운용사들이 수 년에 걸쳐 대대적으로 주가조작을 해왔던 거죠.
튀르키예 BIST100 지수의 최근 5년 추이. 구글 금융
스캔들의 중심인 테라(Tera) 자산운용의 사례를 볼까요. 이 운용사는 펀드 자산을 유통 주식 비율이 낮은 소형주에 집중투자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급등시켰는데요. 2023년엔 펀드 자산의 99%를 모회사인 증권사(테라 야티림 멘쿨 데게를러) 주식에 쏟아부어 주가를 띄웠고요. 비슷하게 소형 조선사(외자타 조선), 소형 금융사(데스텍 피난스 팩토링), 소형 부동산 투자신탁(페케르)의 주식을 쓸어 담았어요. ‘품절주’가 된 이들 종목 주가는 단기간 급등했고요. 덕분에 테라의 주력펀드(TLY)는 2년 만에 무려 4만3000%라는 천문학적 수익률을 기록했죠.
몇 년째 이어진 초대박 수익률 행렬에 튀르키예 개인 투자자들이 앞다퉈 몰려들었고요. 푸술라 같은 다른 자산운용사들도 테라의 전략을 따라 하며 덩치를 키워갔죠. 2025년부터 여기저기서 위험하다는 경고음이 울렸지만 소용없었고요. 지난 6월엔 MSCI까지 나서서 소규모 기업과 투자 펀드 간의 “담합 거래 행위”가 주가를 왜곡한다고 경고했죠.
그리고 8월 말, 튀르키예 증권감독위원회(SPK)가 뒤늦게 칼을 빼 듭니다. ‘펀드는 상장 기업이 발행한 주식의 2~8%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한 거죠. 운용사들엔 날벼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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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수익률의 비결이었던 소형 품절주를 강제로 내다 팔게 되면서, 주가가 폭락했으니까요. 수익 창출의 레버가 거꾸로 작동하면서 폭탄이 터진 겁니다.
펀드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이어졌고요. 9월 15일, 푸술라의 일부 펀드가 ‘환매 불가’를 선언하며 튀르키예 증시 전체가 휘청거립니다. 9월 17일 규제당국은 7개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131개 펀드(총 명목가치 180억 달러, 약 24조원)의 청산을 전격 결정했어요. 검찰은 운용사 경영진과 펀드매니저, 투자받은 기업의 경영진 등을 포함한 100여 명을 체포했죠. 청산된 펀드에 투자금이 묶인 45만명 넘는 이들은 상당한 손실을 피할 수 없을 듯해요.
투자자 피해 못지않은 큰 문제는 속속 드러나는 비리의 사슬인데요. 스캔들의 중심인 금융사와 기업 경영에 대통령 측근 참모진과 전직 정부 관료, 재무차관의 사위, 집권당 간부의 아들 등이 연루됐고요. 에르도안 대통령의 조카가 소유한 기업이 과거 대규모 펀드자금을 유치했던 것 역시 의심을 삽니다. 집권당(AKP, 정의개발당) 부대표는 부부가 펀드런이 터지기 직전에 관련 주식을 팔아서 21억 리라(약 563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게 드러나서 자리에서 물러났고요. 최근엔 이스탄불 증권거래소 CEO가 뇌물 혐의로 체포됐어요.
야당은 정권 차원의 비리라며 연일 공세를 펼치는데요. 에르도안 정권의 확고한 지지 세력인 이슬람주의 단체 아지즈 마흐무드 휘다이 재단까지 이런 비판 성명을 발표한 걸 보면 분위기를 알 수 있죠. “이번 펀드 사태는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감독 부실, 공모, 그리고 정경유착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책임 있는 자들이 처벌받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신뢰’를 논할 수 없습니다.”
또 거꾸로 가는 금리, 괜찮을까?
폰지 스캔들로 무너진 금융시장의 신뢰는 튀르키예 경제의 약한 고리를 건드렸습니다. 화들짝 놀란 해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서 리라화 가치 하락이 가속화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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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MSCI가 ‘2027년 6월까지 별 진전이 없으면 튀르키예를 신흥시장에서 프런티어 시장으로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를 더 부추겼고요. 11월 초, 리라화 환율은 기어이 달러당 50리라 선까지 돌파했는데요.
환율이 너무 가파르게 뛰면 생기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죠. 일단 앞에서 설명한 캐리 트레이드로 챙길 수 있는 수익률이 떨어져서(올해 초 연 20% 이상→현재 10% 이하), 투기자금이 떠날 우려가 커지고요. 국제 유가가 안 그래도 고민거리인데, 환율 탓에 인플레이션을 잡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튀르키예의 최근 5년간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 2026년 9월 물가상승률은 29.73%를 기록했는데, 이는 2021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30% 아래로 떨어진 거였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그래서 10월 22일 튀르키예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회의를 앞두고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많은 기관이 ‘금리 동결’을 예상·권고했어요. 환율 불안하고, 다른 나라 다 금리 올리는 상황인데, 튀르키예가 함부로 금리를 내릴 때가 아니라고 본 건데요. 정작 중앙은행은 이를 외면한 채 1%포인트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죠(연 37%→36%). 최근 물가상승률의 “하락 추세를 확인했다”는 이유였어요. 이 나라에선 물가상승률이 30% 아래로 떨어진 게 거의 5년 만의 일이라서, 대단한 성과로 통하거든요.
하지만 ‘하락 추세’라던 물가상승률은 이후 나온 통계에 따르면 되레 상승한 상황. 아니, 서민들은 치솟는 임대료와 식료품값 때문에 고통받는데, 중앙은행이 이래도 되는 걸까요. 이스탄불 문화대학교의 시난 알친 교수는 이런 우울한 전망을 내놨습니다. “앞으로 리라화 가치가 더 자연스러운 수준으로 하락할 거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겁니다. 현재 인플레이션율이 29%대까지 내려왔지만 2027년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어요.” By. 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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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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