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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소설가
어떤 선남선녀(불교에서는 불법에 귀의한 착한 남자, 착한 여자라는 뜻으로 쓰인다)가 있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양가 부모가 처음 만나는 상견례(相見禮)를 치르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치르는 상견례의 뿌리는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에서 말하는 ‘육례(六禮)’, 곧 관·혼·상·제·향·상견에 있다고 한다. 사람이 서로 처음 만날 때의 예절 혹은 웃어른을 뵙는 예절을 뜻하는 ‘상견’이 육례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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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비부부·양가 부모의 상견례
정치와 돈 얘기 용케 피했지만
배 깎다 떨구자 욕설 튀어나와
예비부부 사과에 훈훈히 끝나
」
‘상견(相見)’은 글자 그대로 ‘서로 본다’는 뜻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두 집안이 서로의 얼굴과 마음씨를 마주 보며 앞으로 한 식구가 될 인연의 첫걸음을 떼는 자리라는 의미다. 그래서 예부터 상견의 예는 격식을 갖추되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겸양을 으뜸으로 쳤다.
결혼 산업 발달로 생긴 상견례
예비부부의 양가 부모가 한정식집이나 호텔 한식당에서 만나는 지금의 상견례는 1980년대 이후 경제가 성장하고 ‘결혼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면서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가 부모와 예비부부가 두 시간 남짓 함께 식사하며 결혼 조건과 혼수, 예식 절차 등을 협의하는 자리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와 현대의 자본주의가 결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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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혼사는 선남선녀의 양가 부모에게 모두 처음 치르는 혼사, 개혼(開婚)이었고 두 남녀 역시 결혼 상대자를 각자의 부모에게 선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남들이 흔히 하는 대로 상견례 장소로 자주 쓰인다는 유명 한식당을 예약했다. 양가의 부모가 먼저 도착했고 시간에 맞춰 퇴근한 남녀, 아니 선남선녀가 홀과 떨어진 별실에 들어섰다. 신중하고 정중한, 주의 깊게 준비된 인사가 오갔다. 양가 부모는 처음 본 예비 사위와 며느리에게 후한 。수를 주었다.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 주신 따님을 저희 식구로 맞아들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눈에도 마음이 잘 맞을 것 같네요. 딸처럼 생각하고 매사 의논하고 허물없이 지내겠습니다.”
“별말씀을요. 저희가 드릴 말씀인데요. 잘생기고 믿음직한 아들이 생겼다 싶네요. 고맙습니다.”
서로 간에 덕담이 오가며 분위기는 .。 화기애애해졌다. 식당이 번잡하지 않으며 음식 맛도 훌륭하다는 데 두 집안의 의견이 일치했다.
양가의 부모는 집을 나서기 전, 상견례 자리에서 꺼내면 안 될 이야기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정치, 종교, 신상(나이·집안·조상), 돈(재산·연봉·연금·주식) 같은 이야기는 절대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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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 선남선녀(괜히 선남선녀이겠는가)도, 그 부모도 문제가 될 만한 언행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예의 바르게 처신했고, 남들이 그토록 부담스럽고 어렵다는 상견례도 무난히 끝나 가는가 싶었다.
두 사람이 상견례를 할 장소로 고른 식당에서는 한식과 양식을 절충한 방식으로 음식을 냈다. 밥과 국, 반찬은 한 상에 차려 내고, 주요리는 순서에 맞춰 따로 냈다. 식사를 마치자 식혜와 같은 음료가 나왔고, 마지막으로 통째로 담은 소담한 사과와 배가 과도·접시와 함께 쟁반에 올라왔다. 손님이 직접 과일을 깎아 먹는 ‘과일 셀프 서빙’이 이 식당만의 방식이었다. 그 간단치 않은 과정을 마주한 예비부부는 긴장했다.
예비 신랑은 무겁고 큰 배를, 예비 신부는 사과를 각각 왼손으로 집어 들었다. 사과와 배를 반으로 가르고 껍질을 벗길 참이었다. 그런데 예비 신랑이 집어 든 배가 커도 좀 심하게 컸다. 억지로 한 손으로 쥐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반으로 가르려고 칼에 힘을 주는 순간 배가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말았다. 배가 식당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순간 예비 신랑·신부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은 “앗, ××”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 이야기를 내게 전해 준 사람은 서두를 게 뭐 있느냐는 표정으로 안달이 나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직업적인 관심입니다. 우리말이 일상에서 얼마나 시의적절하게 쓰이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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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두 사람,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기대됩니다.”
그는 수긍이 간다는 듯 덤덤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꾸밈 없는 모습 보인 상견례
예비부부는 찬물이 들씌워지기라도 한 듯 침묵에 빠진 양가 부모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무심코 쓰던 말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뿐이라고. 부모들은 더욱더 경악했다.
“그럼 너희는 평소에 그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산다는 거니?”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갑자기 안 하던 일을 하려니까 이런 일이 생기네요. 진심으로 깊이깊이 사과드립니다.”
두 사람의 진지한 사과(謝過)와 함께 신중한 예비 신부가 맵시 있게 깎은 사과(沙果)가 접시에 놓였다. 그렇게 예의 바른 ‘사과’로 상견례는 무사히 끝이 났고, 양가 부모 모두 흡족해하는 훈훈한 자리로 마무리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상견’이라는 말의 무게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상견, 그것도 첫 만남에서 서로의 잘 꾸민 모습만 보는 일이 아니라, 꾸미지 않은 본래의 모습까지 함께 보게 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준비해 간 인사말이야 누구나 매끄럽게 건넬 수 있지만, 사람의 본바탕은 뜻하지 않게 굴러떨어진 배 한 알 앞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양가 부모는 그 짧은 소동에서 자식들의 흠이 아니라 솔직함과,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바로잡을 줄 아는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았을 것이다. 서로를 처음 알아본다는 상견의 본뜻에, 어쩌면 그날의 사과 한 알이 가장 충실했을지도 모르겠다.
성석제 소설가
이깊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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