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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리지 않은 하늘 10월 6일 밤 테카포. 마을은 불을 껐지만 낮은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 생성형AI 그날 저녁, 퀸스타운 숙소에 닿자 몸이 먼저 풀렸다. 낯선 차로 위에서 내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달린 탓이었다. 저녁을 먹자마자 잠자리에 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새벽 네 시였다. 창밖은 아직 캄캄했다. [관련 기사: 오른쪽 운전석에 앉고서야 알았습니다, https://omn.kr/2k51o] 찍히지 않는 별 아내는 곤히 자고 있었다. 외투를 걸치고 혼자 숙소 마당에 나가 앉았다. 서울은 막 자정이었다. 하늘에 별이 너무 많아서, 무슨 생각을 해도 작게 느껴졌다. 아내를 깨울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 하늘을 아내에게, 지인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몇 번을 다시 찍어도 화면에는 검은 네모만 남았다. 가장 밝은 별 두어 개가 먼지처럼 박혀 있을 뿐이었다. 눈으로 보는 하늘과 손에 남는 하늘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나는 끝내 그 하늘을 들고 오지 못했다. 한숨 더 자고 일어나 밥스 코브로 향했다. 숲길에서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걷는 젊은 부부들을 여럿 만났다. 일요일이었지만 주말 나들이만은 아니었다. 뉴질랜드 학교는 9월 25일에 3학기를 마치고 10월 12일에 4학기를 연다. 그 가족들은 보름 남짓한 방학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6편에 뉴질랜드 교사들이 동시에 몇 명까지 떠날 수 있는지 적었다. 그 협약보다 오래된 쉼이 숲길에 있었다. 아이 손을 잡고 걷는 방학이었다. 오후에 들른 애로타운에서 가족 단위로 자전거 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금광 시절 중국인 광부들이 살던 오두막 몇 채가 남아, 그 초라함으로 그들의 살림이 얼마나 작았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가족들 위로, 타국에서 가족을 그리며 버텼을 그들의 고단한 하루가 겹쳤다. 퀸스타운에서 하룻밤을 더 묵고, 10월 5일 북동쪽으로 차를 몰아 트위젤에 닿았다. 그런데 예약해 둔 숙소가 취소되어 있었다. 지난 편에 적은 그 카드 신고 때문이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날 아내가 분실 신고한 카드에 이 예약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빈방이 남아 있어 그날 밤을 났다. 학교에서 한 사람이 빠지면 시간표가 줄줄이 흔들리듯, 카드 한 장이 멈추자 거기 묶여 있던 것들이 함께 멈췄다. 잎 대신 가시를 단 나무 이튿날 아침 아오라키/마운트 쿡으로 올라가 후커 밸리를 왕복 세 시간 걸었다. 빙하가 깎아 놓은 골짜기의 자갈밭에 잎 없는 덤불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가지마다 뾰족한 가시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잎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름은 마타고우리, 뉴질랜드에만 자라는 나무다. ▲ 잎 대신 가시를 단 나무 10월 6일 아오라키/마운트 쿡 후커 밸리의 마타고우리. 빙하가 남긴 자갈밭에서 이 뉴질랜드 고유종은 잎을 작게 달고 가시를 길렀다. ⓒ 오성훈 찾아보니 이 가시는 오래전 사라진 거대한 새 모아에게 뜯기지 않으려고 생긴 것이라는 설명이 많았다. 잎은 작게 달았다가 가물거나 추우면 떨어뜨린다. 그래도 나는 그 앞에서 다른 것을 읽었다. 거름기 없는 땅, 쉬지 않는 바람 속에서 이 나무는 꽃이나 그늘을 만들 여유가 없다. 가진 힘을 모두 버티는 데 쓴다. 불이 꺼진 마을, 구름 낀 하늘 오후 늦게 골짜기를 내려와 테카포에 닿았다. 해가 지자 호숫가 마을은 여느 시골보다도 일찍 불을 끄고 조용해졌다. ▲ 열리기 전부터 덮인 하늘 0월 6일 해 질 녘 테카포. 노을이 지는 동안에도 구름은 걷히지 않았다. ⓒ 오성훈 세계에서 손꼽히는 밤하늘이라는 곳이었다. 밤 아홉 시 오십 분, 기대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하늘이 열리지 않았다. 구름이 낮게 덮여 있었고, 그 틈으로 별 몇 개가 비칠 뿐이었다. 은하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을은 할 일을 다 해 두었는데, 하늘이 따라 주지 않은 밤이었다.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그 어둠 속에 서 있으니 하나가 분명해졌다. 구름은 사람이 걷을 수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불을 끄는 데까지다. 그렇게 꺼 둔 마을에서만, 구름이 걷히는 밤에 별이 보인다. 이번 이레가 없었다면, 나는 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볼 저녁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다. 별을 만든 게 아니라, 불을 껐을 뿐 이 어둠은 저절로 남은 것이 아니다. 테카포가 속한 매켄지 지역은 1981년, 마운트존 천문대의 관측을 지키려고 지역 계획에 조명 규정을 넣었다. 시작은 규정이었지만, 그 규정을 45년 동안 지켜 온 것은 주민들이었다. 2012년에는 이 일대가 '아오라키 매켄지 국제 밤하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4,367㎢로 지정 당시 세계에서 가장 넓었고, 남반구에서는 처음이었다. 가장 높은 등급인 골드 티어도 받았다. 낮에 걸은 아오라키/마운트 쿡 국립공원도 이 보호구역 안에 있다. 집 밖 조명은 갓을 씌워 아래로만 비추게 했고, 간판 불빛도 같은 규정을 따르게 했다. 별이 관광 상품이 되기 훨씬 전이었으니, 처음에는 불편하고 손해 보는 규정으로 여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지켜지기만 한 것도 아니다. 보호구역의 2017년 보고서에는 밤새 켜 둔 희고 푸른 주유소 간판과 너무 눈부신 새 가로등이 적혀 있다. 보호구역 측은 업소에 고쳐 달라고 청했고, 간판 규정을 더 엄격히 해 달라는 의견을 의회에 내겠다고 적었다. 켤 수 있는 불을 켜지 않고, 새로 켜진 불은 다시 끄자고 설득해 온 세월이 쌓여 지금 이 어둠이 되었다. 별을 새로 만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별은 원래 거기 있었다. 사람들이 한 일은 가리던 불을 끄고, 끈 채로 오래 버틴 것뿐이다. 구름 낀 밤에도 그 불을 다시 켜지 않았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잠, 그리고 이레 호숫가 숙소로 돌아와 누우니 언젠가 읽은 연구 하나가 떠올랐다. 2017년 <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잠든 쥐의 뇌에서는 깨어 있는 동안 강해진 시냅스 연결이 전반적으로 조금씩 약해지며 다시 조정되었다. 잠은 뇌가 꺼져 있는 시간이 아니라, 깨어 있는 동안 쌓인 것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휴가도 그럴 것이다. 이레는 비어 있는 날이 아니라 서른세 해 동안 쌓인 것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출근하지 않은 아침, 결재하지 않은 오후, 별 한 장 찍히지 않은 밤. 무언가를 더 받은 날이 아니라 켜 두었던 것을 하나씩 꺼 본 날들이었다. 퀸스타운에 내린 날, 낯선 차로를 달린 것만으로 나는 초저녁에 쓰러지듯 잠들었다. 날마다 버티는 사람에게 남는 힘이 얼마나 될지 그날 몸으로 알았다. 낮에 본 마타고우리가 떠올랐다. 쉴 틈 없는 학교에서 교사는 가르치는 일보다 버티는 일에 힘을 쓰게 되고, 그러다 가시만 남기 쉽다. 그 불을 켠 사람 그렇다면 누가 불을 꺼야 하는가. 학교에도 구름은 있다. 입시와 민원, 내 손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불은 다르다.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남 이야기를 할 수 없다. 1편에 적었듯, 서울시교육청 지침의 '없도록 유의'를 우리 학교 지침에서 '없어야 한다'로 바꿔 쓴 사람이 나였다. 서울 지침 마지막 줄의 '학교문화를 조성하도록 노력함'을 옮기지 않은 사람도 나였다. 규정으로는 쉬라고 해 놓고, 교사의 달력에는 불을 켜 둔 셈이다. 그 불을 켠 사람이 바로 그 불을 끌 수 있는 사람이다. 1편의 소제목을 다시 쓴다. 그 규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나다. 고칠 수 있는 사람도 나다. 불을 끄자고 하면 학부모는 옆 학교와 비교할 것이다. 교사도 진도와 입시를 걱정할 것이다. 매켄지의 주민들도 처음에는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작은 것부터는 할 수 있다. 고교학.제로 학생들 시간표에 생긴 빈 시간을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채우지 않는 것, 그래서 교사에게도 숨 돌릴 틈을 남기는 것은 내 결재로 정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휴가를 눈치 보지 않고 쓰는 학교문화는 결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난 편에 적었듯, 승인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차로를 직접 달려 봐야 사각지대가 보인다. 이번 이레로 나는 그 사각지대를 조금 보았다. 이제는 보인 것을 지침에 옮길 차례다. 새벽, 남지 않은 사진 10월 7일, 테카포를 떠나는 날 새벽에 잠이 깨어 혼자 하늘이 잘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마을도 아무것도 밝히지 않은 채였다. 별 사진은 끝내 한 장도 없다. 퀸스타운에서는 찍히지 않았고, 테카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돌아가서 할 말이 하나 생겼다. 구름 뒤에도 별은 거기 있었다. 내가 할 일은 구름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켜 둔 불을 끄는 것이다. <참고 자료> 1) 뉴질랜드 교육부, 'School terms and holidays dates' https://www.education.govt.nz/school-terms-and-holidays-dates 2) Aoraki Mackenzie International Dark Sky Reserve, 'About the Reserve' https://www.darkskyreserve.org.nz/the-reserve 3) Aoraki Mackenzie International Dark Sky Reserve, 'Annual Report 2016-2017'(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 2017) https://darksky.org/app/uploads/2015/01/AorakiMackenzie-IDSR-2017-Annual-Report.pdf 4) Diering 외, 'Homer1a drives homeostatic scaling-down of excitatory synapses during sleep', (2017)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ai8355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무료충전릴게임 . 잠은 뇌가 꺼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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