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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 법정 재해보험총연맹(DGUV) 본부에서 지난 10월 남도일보 취재진이 스벤 팀(Sven Timm) 재해예방조정 책임자, 엘케 비젤(Elke Biesel) 부대변인 등 관계자들과 독일의 산업재해 예방체계 및 안전관리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태훈·박건우 기자
광주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참사와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책임자 처벌과 제도 개선이 이어졌지만, 건설현장의 안전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안전규정을 마련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공사 시작 전 위험을 확인하고 작업 과정에서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남도일보가 해외 안전관리 사례로 독일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은 산업재해 발생 이후 보상에 그치지 않고 사고예방과 재활까지 하나의 법정 사회보험체계 안에서 다뤄왔다. 국가와 산재보험기관이 안전 감독을 분담하고, 공사 계획 단계부터 위험을 관리하도록 제도화한 .도 특징이다.
독일 베를린 도심 곳곳에서 건축물 신축·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남도일보 조태훈·박건우 기자가 현지 통역사의 안내를 받아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건물 외벽에 설치된 비계와 가림막, 보행자와 차량의 통행을 구분하는 안전시설 등을 살펴보고 있다. /조태훈·박건우 기자
◇ 예방부터 '원스톱' 지원까지
독일 산업안전제도는 18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재해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게 단초가 됐다. 산업재해를 개별 사업주의 배상 책임에만 맡기지 않고 사회보험을 통해 근로자를 보호하는 체계를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1884년 법정 산재보험을 도입한 게 출발。이다.
현재 독일 사회법전 제7권(SGB VII) 제1조는 법정 산재보험의 임무를 사고예방과 재활, 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업무상 사고와 직업병을 예방하고, 사고 발생 시 피해자의 건강과 노동능력 회복을 지원하며 필요한 경우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도록 한 것이다.
산재보험기관은 안전교육과 현장 .검, 예방규정 마련 등을 수행하고 사고 이후에는 치료와 재활, 직장 복귀를 지원한다. 사고를 막는 일과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이 별개의 업무가 아니라 하나의 제도 안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보험료는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부담한다. 민간 사업장은 임금총액과 업종별 위험도 등을 반영해 보험료를 납부하며, 기관에 따라 사고 발생 실적을 반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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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가 줄어들면 근로자의 피해는 물론 치료와 보상에 필요한 비용도 줄일 수 있어 예방활동에 힘을 쏟을 이유가 커지는 구조다.
이는 국내에서도 산재보험의 역할을 사고 이후 보상에만 한정하지 않고 예방활동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피해를 보상하는 것과 함께 사고 자체를 줄이는 데 제도의 역량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 안전 의무 부여…발주자 책임 명확히
독일은 1990년대 들어 건설현장의 안전 문제도 공사 계획 단계부터 고려하도록 제도화했다.
1996년 산업안전보건법(Arbeitsschutzgesetz)을 제정하고, 1998년 건설현장안전보건시행령(Baustellenverordnung)을 시행했다.
시행령에 따라 건축주 또는 발주자는 작업 순서와 공사 기간 등을 정할 때 산업안전보건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 안전을 시공 과정에서만 챙겨야 할 문제가 아니라 공사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검토해야 할 사항으로 본 것이다.
여러 사업주의 근로자가 함께 작업하는 현장에는 적격한 안전보건 조정자(SiGeKo)를 선임하도록 했다. 조정자는 공사 계획과 시공 과정에서 업체별 작업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조정한다. 법령상 요건에 해당하면 안전보건계획을 마련하고 공정 변경에 맞춰 내용을 조정한다.
철거와 골조, 설비 등 여러 공정이 맞물리는 현장에서는 한 업체의 작업이 다른 업체의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개별 업체가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공정 간 충돌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막기 어려운 이유다.
여러 하청업체가 참여하는 국내 건설현장에서도 업체별 안전관리 못지않게 공사 전체의 위험을 누가 확인하고 조정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독일은 발주와 계획 단계부터 이러한 문제를 다루도록 했으며, 조정자를 선임하더라도 발주자와 개별 사업주의 안전 확보 의무는 유지된다.
국회도서관도 지난해 발간한 독일 건설현장 안전 관련 입법례 자료에서 이 같은 관리체계에 주목했다. 건축주와 설계자, 고용주에게 안전 확보 의무를 부여하고 현장 。검을 통해 위험을 예방하는 방식이 국내 입법에 참고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독일 베를린 도심 곳곳에서 건축물 신축·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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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일보 조태훈·박건우 기자가 현지 통역사의 안내를 받아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건물 외벽에 설치된 비계와 가림막, 보행자와 차량의 통행을 구분하는 안전시설 등을 살펴보고 있다. /조태훈·박건우 기자
◇ 국가·산재기관 감독…노사 함께
이러한 예방 중심의 원칙을 뒷받침하는 것은 국가 감독기관과 법정 산재보험기관이 함께 산업안전을 관리하는 이원적 감독체계다. 정부가 법률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동시에 업종별 전문기관이 현장 특성에 맞는 예방활동을 수행해, 법적 감독과 실질적인 사고예방을 함께 추진할 수 있다는 장.이 있다.
연방정부가 관련 법률과 정책의 기본 틀을 마련하면 주 정부 감독기관이 사업장의 법령 준수 여부를 .검한다. 이와 별도로 업종별 산재보험기관은 사고예방 규정을 마련하고 안전교육과 현장 .검, 기술 지원 등을 담당한다.
독일 법정 산재보험협회(DGUV)는 이들 기관을 대표하는 상위 협회다. 실제 보험 운영과 예방활동은 업종별 직종조합과 공공부문 산재보험기관이 맡는다.
정부의 감독만으로 다양한 현장의 위험을 모두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독일은 업종별 특성을 잘 아는 전문기관이 예방활동에 참여하도록 해 이를 보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감독기관과 전문기관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현장에 필요한 안전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산재보험기관 운영에는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가 동등하게 참여한다. 안전관리의 대상인 근로자가 제도 운영에도 참여해 현장에서 겪는 위험과 개선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업주와 근로자가 안전 문제를 함께 논의한다는 .에서도 의미가 있다.
사고 발생 이후에는 산재의사(Durchgangsarzt) 제도도 활용된다.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업무상 사고의 경우 전문의사가 환자 상태를 확인해 산재보험기관에 보고하고 치료와 재활을 연계한다. 사고 이후의 대응 역시 사업주에게만 맡기지 않고 의료체계와 보험기관이 함께 담당하는 방식이다.
독일 지난 10월 프랑쿠푸르트에서 남도일보 조태훈·박건우 기자가 독일 건설업 산재보험조합(BG BAU), 베를린 지역본부 재해예방부서, 독일소방협회(DFV) 등 현지 기관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김기철 전남광주특별시 유럽사무소장과 함께 취재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조태훈·박건우 기자.
◇ 남긴 과제는…"현장 작동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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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산업안전체계는 사고를 막는 일뿐 아니라 사고 이후 피해자를 보호하는 과정에서도 살펴볼 부분이 있다.
국내에서는 산재 인정 절차가 길어지면서 피해 노동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업무상 질병 관련 역학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망한 노동자는 189명에 달했다. 업무상 질병의 평균 산재 처리 기간도 2019년 186일에서 지난해 244.7일로 늘었으며, 올해 6월 기준 221.4일을 기록했다.
산재 인정이 늦어질수록 피해 노동자와 가족이 치료와 생계 문제를 감당해야 하는 기간도 길어질 수 있다. 사고예방 못지않게 피해자가 필요한 지원을 제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체계가 중요한 이유다.
독일은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면 사업주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법에서 정한 보험급여를 제공하고 치료와 재활, 직장 복귀를 지원한다. 다만 독일 역시 산재 인정 절차가 필요하며 모든 신청자에게 판정 전 보상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도 산업재해는 계속 발생한다. DGUV에 따르면 2025년 건설업 관련 산재보험기관의 신고 대상 업무상 사고는 8만9천113건으로 전년보다 2.9% 감소했고, 사망자는 78명에서 74명으로 줄었다.
독일 역시 사고 없는 완벽한 제도를 갖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예방과 감독, 피해자 보호를 법적 책임으로 정하고 이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 왔다는 .은 의미가 있다.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건설산업 구조와 하도급 관행에 맞춰 개선할 부분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업주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광주 학동과 화정아이파크 참사가 남긴 과제는 법에 정해진 의무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사고 이후 책임을 묻는 것과 함께 위험을 사전에 찾아내고 바로잡는 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
스벤 팀 독일 법정 산재보험협회(DGUV) 관계자는 "산업안전은 사고 이후 책임을 묻거나 피해를 보상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위험을 사전에 찾아내고 이를 줄이기 위한 조치가 실제 현장에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예방과 감독, 사고 이후 치료와 재활이 함께 이뤄져야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좋은 법과 제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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