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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가을, 나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석사장교 사관후보생으로 훈련을 받던 중이었다. 훈련소에서 바깥소식은 늘 늦게, 그리고 짧게 도착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그렇게 들었다. 딱히 슬픈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단지 재즈의 역사에서 이제 한 시대가 저물었구나, 새로운 시대가 오겠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금년은 존 콜트레인 탄생 100주년이면서 동시에 마일스 데이비스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 그는 1926년 5월 26일 일리노이주 올턴에서 태어났고, 1991년 9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마일스의 음악에 열광해본 적이 거의 없다. 존 콜트레인이나 빌 에반스나 키스 자렛의 음악에는 몸이 먼저 반응하여 감성적으로 빠져들었지만, 마일스의 음악에는 어쩐 일인지 머리가 먼저 반응하여 매번 이성적인 분석이 앞장섰다. 마일스는 왜 이렇게 연주했을까, 왜 이 앨범을 낸 후 밴드를 해체했을까, 이번 앨범은 도대체 어디로 가려던 것이었을까. 좋게 말하면 지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탐구하듯 그의 음악을 들었다. 어쨌거나 감성적으로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취향과는 별개로 재즈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콜트레인보다 오히려 더 크다. 그래서인지 탐구심을 채우고자 그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원서로 찾아 읽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마일스를 듣는 가장 마일스다운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자신이 평생 감정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늘 새로운 재즈의 방향을 고심하며 설계하던 음악가였으니까. 마일스 데이비스. / © Jack Vartoogian/Getty Images, 출처. 올림푸스 뮤직 홈페이지 장르를 만들며 역사를 써나간 사람 한 음악가가 평생 새로운 장르 하나를 여는 것도 드문 일이다. 마일스는 적어도 두 번 그 일을 했다. 첫 번째는 쿨 재즈다. 열정적으로 뜨겁게 연주하던 비밥 재즈에 대한 반작용으로 1940년대 말에 등장한 장르로서, 느긋한 템포와 부드러운 음색, 절제된 연주와 정교한 편곡을 특징으로 한다. 비밥이 음을 쏟아내는 음악이었다면, 쿨은 음을 덜어내고 여백과 절제로 말하는 음악이었다.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가 이끈 비밥은 빠르고 복잡했다. 릴게임용의눈 스무 살 무렵 찰리 파커의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던 청년 마일스는 그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1949년 무렵 편곡자 길 에반스 등과 함께 9인조 편성으로 마일스가 녹음한 곡들은 싱글로 흩어져 발매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리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몇 년간 마일스는 헤로인 중독에 빠져 슬럼프를 겪었지만, 결국 중독을 끊어내고 1955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에 음반사는 뒤늦게 1957년에 이르러서야 마일스의 연주를 다시 묶어 <Birth of the Cool>이라는 타이틀로 시장에 내놓았다. 그리고 이 타이틀은 곧 한 장르의 이름이 되었다. [마일스 데이비스 앨범 <Birth of the Cool>] 두 번째는 퓨전이다. 1960년대 말 재즈의 즉흥연주에 록과 펑크의 리듬, 전자 기타와 키보드 같은 악기를 결합해 탄생한 장르다. 어쿠스틱 악기로 연주하던 재즈에 전기를 꽂고 록의 리듬을 입힌 음악, 그것이 퓨전 재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고, 먼저 1959년에 나온 <Kind of Blue>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이 앨범에서 마일스는 복잡한 코드 진행 대신 연주자들에게 몇 개의 음계만 건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연주하게 했다. 모달 재즈라 불리는 이 방식은 이후 재즈의 문법을 바꾸었고, 이 음반은 지금도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음반 중 하나로 꼽힌다. 장르를 두 번 만들었다고 했지만, 사실 모달 재즈까지 포함하여 세 번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사람 보는 재능이 만들어낸 퓨전 재즈의 지도 마일스에게서 내가 가장 경탄하는 것은 그의 트럼펫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알아보는 재능이다. 그는 아직 이름 없는 연주자들을 보며 미래에 발현될 잠재력을 알아보는 사람이었다. 1955년 그가 첫 퀸텟을 꾸렸을 때 테너 색소폰 자리에 앉힌 사람이 존 콜트레인이었다. 1958년에는 훗날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규범을 정립한 백인 청년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를 불러들였다. 오션파라다이스7 1960년대 중반 두 번째 퀸텟에서 함께 했던 웨인 쇼터, 허비 행콕,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를 비롯하여 1970년 전후까지 그의 스튜디오를 거쳐 간 사람들의 면면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마일스와 함께 활동한 후 칙 코리아는 리턴 투 포에버를, 존 맥러플린은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를,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는 웨더 리포트를, 허비 행콕은 헤드헌터스를 만들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재즈사의 한 장을 이끌었던 거장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한 시기 재즈의 역사가 된다. 1970년대 퓨전 재즈의 지도는 사실상 마일스 밴드 출신 연주자들의 모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며 그 이름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키스 자렛 역시 이 시기의 마일스 밴드에서 건반을 치다 독립했다. 마일스는 장르를 만든 사람이면서, 동시에 장르를 만들어갈 사람들을 만든 사람이었다. 편집실이 악기가 되다. 1969년 2월 18일, 마일스는 단 한 번의 세션으로 퓨전 재즈의 출발。이 되었던 <In a Silent Way> 앨범을 녹음했다. 전자 피아노와 오르간 그리고 일렉트릭 기타가 마일스의 트럼펫과 함께했다. 이 음반은 음악기술사의 관.에서도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단 두 곡이 담겨있는 이 음반은 사실 일반적인 연주의 기록이 아니라 인위적인 편집의 결과물이었다. 프로듀서 테오 마세로는 세 시간 분량의 녹음테이프를 자르고 이어 붙여 두 개의 긴 곡을 만들었다. 특히 LP 음반의 앞면에 실린 ‘Shhh/Peaceful’에서는 처음 6분을 그대로 복사해 곡의 끝에 한 번 더 붙였다. 같은 연주가 두 번 나오는 것이다. 오버더빙조차 금기처럼 여겨지던 당시 재즈계에서 이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잘라 붙이기' 방식의 음악 제작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 앨범 ] 같은 해 8월 19일부터 사흘간 녹음한 <Bitches Brew> 앨범에서는 이 방식을 더 밀어붙였다. 열두 명의 연주자가 스튜디오에 모였고, 테이프는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돌아갔다. 녹음을 마친 연주자들은 마일스의 집에 모여 편집 전의 연주를 들었다 알라딘다운로드 . 그런데 이듬해 음반이 나왔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연주를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마세로가 테이프와 자르고 이어 붙이며 곡의 구조를 통째로 다시 짰기 때문이다. 재즈는 오랫동안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즉흥 연주'를 모두가 동의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삼아 발전해왔다. 하지만 마일스와 마세로는 그 신화를 깨고, 편집실을 또 하나의 악기로 만들었다. 수많은 테이크 가운데 무엇을 고르고 어디를 자르고 어떻게 이을지를 결정하는 것도 창작이라는 생각. 그것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수없이 쏟아지는 AI 생성 결과물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고 몇 개를 이어 붙이는 우리 시대 음악 작업의 풍경과 그리 멀지 않다. <Bitches Brew>는 마일스의 음반 중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가장 높은 35위까지 올랐고, 결국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대가도 따랐다. 일부 평론가들의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이 음반이 뿌린 씨앗에서 이후 수많은 퓨전 재즈의 명반들이 탄생했다. 침묵, 그리고 귀환 1975년, 마일스는 돌연 무대에서 사라졌다. 건강 문제와 약물이 겹친 긴 공백이었다. 그가 돌아온 것은 1980년대 들어서였다. 복귀 후의 마일스는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 그리고 팝 음악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1986년에 발매된 <Tutu> 앨범은 베이시스트 마커스 밀러가 작곡과 편곡 대부분을 맡은 음반으로서, 그에게 네 번째 그래미상을 안겨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의 마일스 음악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Tutu>의 매끈한 사운드에서는 <Bitches Brew>에서 보여주었던 실험정신이나 위험한 긴장감조차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마일스는 늘 그래왔던 것 같다. 그는 언제나 지나간 음악에 심취한 팬들을 뒤로한 채 새로운 음악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에게는 호응하는 청중보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미래의 음악이 더 중요했다. 마지막 여름, 몽트뢰 마일스는 늘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질주했다. 그는 과거의 레퍼토리를 다시 연주하는 일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런 그가 1991년 7월 8일,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는 1950년대에 길 에반스가 그를 위해 쓴 편곡들을 연주했다. 퀸시 존스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함께였다 카카오바다이야기 . 첫 곡은 ‘Boplicity’였다. 42년 전, 스물세 살의 마일스가 길 에반스와 함께 녹음했던 쿨 재즈의 출발.이다. 아마도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옛 동료 길 에반스에게 바치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 마일스 역시 중병을 앓고 있었다.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은 9월 28일, 그는 뇌졸중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일스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새롭게 힙합 앨범을 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눈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었다. 지난 7월, 나는 마일스의 마지막 무대 몽트뢰에서 열린 AI 재즈 경연대회에서 수상을 했다. 그가 새로운 음악으로 끊임없이 이어온 긴 여정을 마무리했던 그 도시에서 AI라는 낯선 도구로 또 다른 재즈를 만들어 무대에 올리게 될 줄은 상상해보지 못했었다. 마일스 이후, 새로운 세대가 왔을까 훈련소에서 그의 부고를 들으며 나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재즈의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길 기대했다. 그러나 35년이 지난 지금, 그 기대가 이루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1980년대부터 윈튼 마살리스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신전통주의가 재즈의 주류를 이뤘다. 연주는 훌륭했지만, 방향은 앞이 아니라 뒤였다. 재즈의 정통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것이 마일스의 영향력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너무 많은 문을 처음으로 열었다. 쿨, 모달, 퓨전. 그가 떠난 뒤 재즈는 새로운 문을 여는 대신, 그가 열어둔 방들을 차례로 다시 둘러보는 쪽을 택했다. 물론 재즈와 힙합을 섞는 새로운 세대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장르의 지도를 통째로 바꾸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마일스 같은 사람이 다시 나오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그가 재즈계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자 가장 큰 과제인지도 모른다. 마일스 데이비스. / 출처. 마일스 데이비스 홈페이지 책과 스크린 속의 마일스 그에 비하면 함께 읽은 크리스 머피의 <Miles To Go>는 모범적이지만 다소 틀에 박힌 기록이었다. 성실하게 쓰였지만, 마일스의 목소리는 상당히 완곡하게 정돈되어있었다. 두 권을 나란히 읽으며 알게 되었다. 마일스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잘 정리된 연대기보다 그의 목소리 그 자체라는 것을. 스크린은 더 아쉬웠다 무료릴게임 . 2015년 배우 돈 치들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Miles Ahead>는 돈 치들의 연기를 제외하고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직접 트럼펫까지 배워가며 마일스의 쉰 목소리와 날 선 성격을 재현했지만, 영화는 도난당한 녹음테이프를 되찾는다는 허구의 추격극으로 이야기를 채웠다. 가상의 기자와 함께 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마일스는 우리가 아는 마일스가 아니었다. 자서전의 욕설 한 페이지가 이 영화 전체보다 더 마일스다웠다. 마일스를 영상으로 만나고 싶은 독자라면 차라리 다큐멘터리 <Miles Davis: Birth of the Cool>을 권한다. 100주년을 맞아 또 한 편의 극영화가 준비 중이라고 하니, 이번에는 조금 더 나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마일스 데이비스 다큐멘터리 <Miles Davis: Birth of the Cool>] So What 마일스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생일인 5월 26일 뉴욕 브루클린에서는 다큐멘터리 속 마일스의 트럼펫 연주에 새로 편곡한 앙상블 연주를 실시간으로 입힌 공연이 열렸다. 1965년 시카고 플러그드 니켈 클럽의 실황 연주를 담은 전집도 30년 만에 음반으로 다시 나왔다. 몽트뢰의 마지막 공연 실황도 새로 리마스터되어 LP로 나왔다. <Kind of Blue>의 첫 곡 제목은 ‘So What’이다. ‘그래서 뭐?’라는 뜻의 이 말은 아마도 마일스가 음악을 만들며 수도 없이 내뱉었을 것이다. 비밥이 대세라고? 그래서 뭐. 재즈에 전자 악기는 안 된다고? 그래서 뭐. 배신자라고? 그래서 뭐. 그는 평생 그렇게 물으며 거침없이 앞으로만 걸어갔다. 9월 28일은 그의 35주기다. 나는 여전히 존 콜트레인과 빌 에반스와 키스 자렛의 음반을 더 자주 꺼내 들을 것이다. 그들의 음악에는 몸이 먼저 반응하니까. 그래도 오늘만큼은 <In a Silent Way>를 찾아 들으며 글을 쓴다. 열광하지는 않지만, 이 음반 앞에서는 여전히 질문이 생긴다. 음악이 시작하고 12분이 지나면서 편집된 첫 6분이 다시 돌아오는 그 순간, 나는 평생 뒤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앞으로만 걷던 사람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 반복을 듣는다. 그리고 35년 전 훈련소에서 그랬듯, 그가 몽트뢰 이후에는 어디로 가려 했을지를 생각해본다. 마일스 데이비스. / 출처. 마일스 데이비스 홈페이지 용호성 문화예술평론가·前 문체부 차관 ay>를 찾아 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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