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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건너편엔 임도(林道)와 같은 산악 도로가 길게 이어졌다. 코앞을 지나는 구간도 있다. 산 허리나 자락을 잘라 길을 뚫었다. 산길이긴 하나 비교적 반듯하다. 망원경으로 당겨보니 길을 따라 콘크리트 기둥을 세웠고 거기에 세 겹의 철조망을 둘렀다. 철조망과 길은 산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경기도 연천 태풍전망대에서 보이는 북한의 휴전선 국경선화 현장. 3중 철조망과 전술도로가 군사분계선(MDL)과 가까운 거리(최단 47m)에 설치돼 있다. 북한은 2023년 12월 한국을 적대적 국가로 규정한 뒤 2024년 4월부터 비무장지대(DMZ)를 요새화하고 있다. [사진 독자]
지난달 30일 경기도 연천군 태풍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북한의 휴전선 국경선화 현장이다. 태풍전망대는 안보 관광 목적으로 민간인에게 개방된 곳이다. 이런 전망대가 11개 있는데, 이 중 태풍전망대가 북한과 가장 가깝다. 여기서 군사분계선(MDL·휴전선)까지 거리가 짧게는 800m이며, 가장 가까운 북한 감시초소(GP)까지 1600m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발효한 뒤 남북한 사이 MDL이 그어졌다. 경기도 파주 임진강 하구~강원도 고성 동해안에 200m 간격으로 표지판 1292개가 설치돼 있으며 이를 가상으로 이은 선이 MDL이다. MDL 북쪽, 남쪽으로 각각 2㎞ 떨어져 북방한계선(NBL)과 남방한계선(SBL)이 있다. 이 둘이 사실상 국경 역할을 한다. 둘의 중간이 버퍼존(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DMZ)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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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23년 12월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 2024년 4월 ‘휴전선 국경선화’ 작업에 들어갔다. MDL 주변의 수풀을 베고 지뢰를 심은 뒤 철조망을 깔고 전술도로를 놓았다. 또 NBL을 따라 군데군데 대전차 장애물을 설치했다. 이 때문에 휴전선 국경선화를 ‘DMZ 요새화’라고 한다.
경기도 연천 태풍전망대에서 바라본 베티고지. 3중 철책과 전술도로가 선명하게 보인다. 베티고지는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MDL) 북쪽 지역으로 지정됐다. 베티고지 바로 앞에 임진강이 흐르는데, 이 구간에선 임진강이 MDL이다. 언덕에서 흙이 내린 흔적은 북한군이 지난달 중순 자재를 구하려 폭파하면서 생겼다. [사진 독자]
태풍전망대 창밖으로 북한의 3중 철조망이 눈에 띄었다. 철조망과 바짝 붙은 흙길은 전술도로였다. 비포장 상태였다. 정전협정에서 지정한 NBL은 훨씬 북쪽에 있고, 언덕으로 가려졌다.
전망대 앞으로 임진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나지막한 언덕들이 늘어섰다. 이들 언덕을 두고 6·25 전쟁 때 정전 직전까지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임진강과 바로 맞닿은 120m 베티고지가 그중 하나다. 1953년 7월 15~16일 국군 1개 소대가 중공군 3개 대대와 싸워 지킨 곳이다. 그러나 정전협정은 베티고지를 MDL 이북 지역으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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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티고지 정면에선 임진강이 MDL이다.
베티고지에서 산사태가 난 것처럼 흙과 돌이 흘러내린 곳이 관찰됐다. 지난달 중순 북한군이 폭파한 흔적이었다. 북한군이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현장에서 구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비를 임시로 보관하는 가건물도 보였다.
지난달 30일엔 현장에서 북한군을 볼 수 없었다. 지난달 중순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인지 당시 작업을 잠시 멈춘 것으로 보였다. 한창때 수십 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 DMZ에 투입된 북한군이 솜으로 귀를 틀어 막은 채 아군의 경고사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작업했다”며 “아군 경고사격을 받으면 북한군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곧 작업하곤 했다”고 귀띔했다.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북한의 휴전선 국경선화가 상당히 진행된 걸 확인할 수 있다. 우주 AI 종합 토털 솔루션 기업인 텔레픽스가 제공한 2025년 6월 23일과 지난 6월 23일 태풍전망대 북측 22km²의 사진을 비교했다. 1년 새 대규모 개활지(탁 트인 땅)와 전술도로가 MDL 근처에 새로 생겼다. 지난해 소로(小路)가 희미하게 보였으나, 올해 폭 10~30m의 전술도로가 나타났다. MDL과 47~630m 떨어져 있다. MDL 북방 1.7~2.5㎞ 사면(斜面)의 개활지는 대부분 기존의 뙈기밭(텃밭)을 넓힌 것으로 보였다. 북한군이 앞으로 진지나 군사시설 부지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위성사진에 따르면 일부에서 북한이 MDL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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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전망대 북동쪽 구간에선 북한의 전술도로가 MDL을 가로질렀다. 어림잡아 길이 160m 이상의 전술도로가 MDL 남쪽 57m까지 내려왔다. 텔레픽스 측은 “오차가 있을 수 있어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전술도로가 MDL을 침범하진 않았다 ”며 “전방의 상황을 집중적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DMZ와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의 MDL 기준선과 아군의 MDL 기준선, 북한군의 MDL 기준선이 서로 다른 곳이 적지 않다. MDL 표지판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거나 훼손됐다”며 “북한에 MDL 기준선을 다시 정하는 회담을 하자고 제의해도 묵묵부답이고, 유엔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이 휴전선 국경선화 과정에서 MDL을 자신들 기준선에 맞췄을 가능성이 크다.
2018년 12월 12일 남북 군사당국이 9·19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안 GP(감시초소)에 대해 상호검증에 나섰다. 사진은 강원도 철원 중부전선에서 우리측 현장검증반과 북측 현장검증반이 만나는 모습. 당시 남북한이 갖고 있는 상대 GP의 좌표가 서로 달라 혼선을 빚었다고 한다. 국방부
남북 군사회담 대표를 맡았던 문상균 전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은 “북한의 휴전선 국경선화는 DMZ의 무력화(無力化)이며, 이는 남북한 완충지대가 사라지는 걸 의미한다”며 “DMZ에서의 우발적 충돌이 국지전으로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한국을 적대 국가로 선언했기 때문에 앞으로 DMZ에 병력과 중화기를 전진 배치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지나 군사시설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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