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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시대의 현실을 드러내고 광고는 당대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고통과 억압에도 삶을 살아내는 모습이 거기에 있습니다. 100년 전 삶의 현장을 1920~30년대 근대 문학과 당시 신문 광고를 통해 읽습니다.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9> 이기영 소설 ‘고향’의 ‘쪼코렛트’
소설가 이기영(1895~1984).
1933~1934년 조선일보 연재 소설 ‘고향’에서 초콜릿은 ‘연애 사탕’으로 불린다. 작가는 사회주의 계열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소설가 이기영(1895~1984)이다. 그는 소설 화자를 통해 ‘쪼코렛트’는 ‘련애 사탕’이라고 말한다. 당시 초콜릿 표기는 쪼코렛트, 초코레트, 초코렛-트, 죠코레드, 조고레도 등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왜 불렀어!”
“고만 나오너라.”
“왜?”
“읍내로 산보 가자.”
“읍내로?-뭐 사주면 가지.”
“뭘 사주니?”
“련애사탕.”
“호호호- 련애사탕이 뭐냐?”
“쪼코렛트도 몰라?”
두 처녀는 풀밭에 대골대골 구르며 웃어댔다.
서울에서 공부하다 고향에 온 열여덟 살 갑성은 이복 누나 갑숙이 부르자 냇물에서 놀다가 나온다. 갑숙의 친구 인순은 오랜만에 본 친구의 남동생을 넋 놓고 한참동안 쳐다본다. “갑성이의 벌거벗은 몸은 건강한 육색(肉色)이 태양에 이글이글 타올랐다.” 소설에서 ‘쪼코렛트’는 달콤한 연애를 상징한다. 두 처녀는 ‘연애 사탕’이란 말에 풀밭을 구르며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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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발표된 1933~34년 무렵 초콜릿은 시골 읍내에서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모양이었을까. 이기영은 1927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유혹’에서 초콜릿 제품의 생김새를 설명한다.
“자-하나 먹어보-!” 하고 그는 호주머니에서 무엇을 한 움큼 꺼내 놓는다. 유지로 네모나게 싼 것은 그 전에 어머니가 정거장에서 사다 준- 권연갑 같은데 든 것이었다마는 납지에 돌돌 뭉친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싫어요” 하고 옥단이는 무안한 듯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었다. “왜요? 이거 서울서 사온 게요!” 하고 그는 다시 초코레트 한 개를 집어준다.
서울 학생인 그는 시골 처녀 옥단에게 잘 보이려고 ‘초코레트’를 집어준다. 호주머니에서 한 움큼 꺼냈다는 것으로 보아 초콜릿은 낱개 포장이었던 듯하다. 일부는 납지(은박지)에 싸여 있다. 소설 ‘고향’을 쓰기 6~7년 전인 1927년 무렵에는 시골 마을에서 이런 초콜릿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불과 6~7년 사이 초콜릿 보급이 많이 이뤄진 것이다.
초콜릿은 당시 신문 광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본 기업 모리나가(森永)제과의 ‘밀크 초코렛-트’가 자주 보인다. 은박지로 싼 판형 초콜릿을 제품 이름이 인쇄된 종이로 감싼 형태였다. 모리나가는 1918년 밀크 초콜릿 생산에 성공하고 이어 식민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1930년 1월 23일 석간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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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근대의 맛’을 강조했다. “이 한 개의 초코렛-트가 빛과 맛과 향기에 가장 세련된 근대미(近代味)를!”(1930년 1월 23일 석간 6면), “미각에 근대색(近代色)을 구하려거든 위선(爲先·우선) 손을 쵸코레-트에 내놓을 것이다”(1930년 2월 23일 석간 7면)라고 카피를 뽑았다.
둘째 ‘사랑의 과자’였다. “사랑한다 하면 신체가 .。 건장하게… 마음은 어디까지든지 상쾌하게…”(1927년 3월 17일 석간 3면), “명랑한 건강미에 빛나는 그녀! 우리 ‘초코렛트’의 찬미자인 그녀!”(1930년 4월 10일 석간 6면)…. 초콜릿을 먹으면 사랑에 빠질 듯하다.
1930년 4월 10일 석간 6면
셋째, 건강에 좋은 자양 식품이다. “본품의 영양! 계란 우유의 3배 2160 칼로리!”(1928년 12월 18일 석간 8면), “그는 지치지 않는다! 결코 지치지 않는다. 쵸코레-트를 열애(熱愛)하는 까닭이다”(1931년 1월 24일 석간 3면)라는 문구를 스키 타는 남자 그림과 함께 내세웠다.
1931년 1월 24일 석간 3면.
끝으로 아이들을 겨냥했다. 어린이와 어른 그림 위에 “나는 알지 알지요. 아버지 감춘 조코레-토”(1928년 3월 16일 석간 5면)라고 적었다.
모리나가는 ‘칼레지’ ‘하모니가’ ‘스포-스맨’ ‘올나이스’ ‘파라마운트’ 같은 다양한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시장을 주도했다.
1930년 2월 23일 석간 7면.
독.은 아니었다. 경쟁 업체 메이지(明治)제과가 모리나가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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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제과는 1926년 밀크 초콜릿을 시판하고 이내 조선에도 상륙했다. 제복 입은 군인 그림 모델을 내세우고 “광영 있는 공훈, 빛나는 건강, 메이지(明治) 쵸코레-트”(1932년 4월 5일 석간 3면)라고 광고했다. 모던한 맛도 강조했다. “미(美)와 건강에의 근대 식료품!”(1936년 3월 6일 석간 1면)이라고 했다.
메이지제과는 후발 주자인만큼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쳤다. 1930년 10월 1일 본정(本町·현 충무로) 2정목에 3층 건물 ‘메이지제과 매.’을 열었다. 초콜릿을 비롯한 자사 제품과 커피 등 음료를 판매했다. 경성 여행 책자와 기념 엽서에 소개될 만큼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모리나가도 뒤따랐다. 1939년 10월 10일 종로 2정목에 전문 매장 ‘모리나가 캔디스토어’를 내고 메이지제과에 대항했다.
1930년대 경성 본정 상.가. 왼쪽에 메이지제과 매。이 보인다. /사진그림엽서 아카이브
1936년 3월 6일 석간 1면.
판형 초콜릿은 5전, 10전, 20전짜리가 있었다. 싸지는 않지만 먹기 어려울 정도로 비싼 값도 아니었다. 소설 ‘고향’의 등장 인물 갑성이는 초콜릿을 사러 읍내로 간다. 소설 배경은 충남 천안 원터마을이다.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초콜릿은 맛보기 힘들어졌다. 일제가 침략 전쟁으로 달려가면서 원료 수급이 어려웠다.
해방 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미제 초콜릿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미군을 쫓아다니며 ‘초코렛토 기브 미’를 외쳤다. 한국 기업 해태제과는 1968년 판형 초콜릿을 처음 출시했다. 1970년대 들어 동양제과(오리온)·롯데제과가 잇달아 초콜릿 제품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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