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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테 안경 너머로 맑고 순수한 눈빛이 빛을 더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동안인 얼굴에는, 수십 년의 현장과 수십 년의 봉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세존종합건설 대표 김민철(64). 포항 지역에서 그의 이름 앞에는 어느새 '공헌활동의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장학회를 꾸리고, 봉사단체를 창단하고, 억울한 이웃의 손을 잡는다는 사실은 언뜻 낯설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한 겹씩 벗겨내다 보면, 그 모든 행보가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왔음을 알게 된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건넨 라면 열 박스, 바로 그 자그마한 온정이 출발。이었다. △질통을 지고 오른 현장, 그곳에서 배운 것들 김 대표는 원래 포항 사람이 아니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그는 이른 나이부터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 야학으로 주경야독하며 버텼지만, 공부보다 돈이 더 절실했던 시절의 무게는 그를 교실이 아닌 현장으로 이끌었다. 핫도그 장사를 해보기도 했고, 병아리 장사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가 택한 것은 배운 것이 적어도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공사일'이었다. 인터뷰 도중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질통'이라는 단어 하나가, 당시 현장의 풍경을 단번에 소환했다. 시멘트와 자재를 가득 담은 질통을 지고 오르내리던 그 시절, 3D 업종의 고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당시 잘나가는 직장인의 월급이 3만 원이던 시절, 그는 월 1만5000원을 손에 쥐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릴게임종류 . 공사 일을 시작한 지 불과 3년 만에 방수 기술을 갖춘 작업반장(오야지)로 인정받았다. 그가 터득한 기술은 전문학교의 교육이 아니었다. 땀과 시행착오, 그리고 수없이 반복된 실패 끝에 쌓아 올린 현장의 내공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가 특히 깊이 파고든 분야는 '방수'였다. 방수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답했다. "물이 새면 건물에게 묻는다. 대체 어디가 아파서 눈물을 흘리냐." 짧은 정적이 흐른 뒤, 그는 보다 현실적인 언어로 덧붙였다. "건물에 물이 새는 것은 많은 데이터를 체득하고 쌓아가는 것에 있다. 나만의 실험과 시행착오로 노하우를 만들었는데, 포항에서 신축 관급 공사 절반 이상은 내 손길이 닿았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건물의 고통을 읽어내는 감각, 그것이 그가 수십 년 현장에서 길러낸 언어였다. △1988년 11월, 포항에 내딛은 첫발 김 대표는 1988년 11월을 또렷이 기억한다. 서울 일산에 있던 그가 포항에 처음 발을 내딛은 시。이다. 88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그해 늦가을, 그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낯선 도시로 향했다. 포항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절,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건넨 라면 열 박스는 단순한 식량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생활비에 여유가 생기자, 그의 마음속에는 곧바로 하나의 생각이 싹텄다. 무료바다이야기 '결식 가정을 돕자.' 이전에 청년들을 이끌며 교회 활동을 했던 경험이 그 마음을 조용히 밀어붙였는지도 모른다. 그 뜻은 혼자만의 것으로 머물지 않았다. 라면 열 박스가 불러온 여유와 선의는, 그를 포함한 현장소장, 미장, 타일, 샷시, 페인트 관련 업자 9명을 하나의 자리에 모이게 했다. 배곯는 학생들이 없도록 금전을 보태자는 뜻이 모인 자리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우리클럽'은 그렇게 탄생했다. 라면 한 박스의 온기가 아홉 사람의 마음을 데웠고, 그 온기는 다시 더 많은 이들에게로 번져 나갔다. ▲ 김민철 대표(왼쪽 다섯번째)가 진평장학회를 결성 후 관계자들과 현판식을 하고 있다. 김민철 대표 제공 △고비를 넘어, 갈수록 커지는 선행의 눈덩이 선행의 길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한우리클럽은 모종의 이유로 흩어졌고, 김 대표는 한동안 그 공백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것, 그것 역시 그의 능력이었다. 2012년경, '진평장학회'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2015년에는 '세존장학회'로 이름을 바꾸며 활동의 폭을 넓혔다. 장학금 지원 대상은 편부·편모 가정의 학생들로, 성적이 우수할수록 선정 우선순위가 높아지는 방식을 택했다. 지원 범위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를 넘어 대학원까지 이어졌고, 기숙사비 지원도 병행했다. 어느새 유명 대학 박사과정에 이른 수혜 학생들도 여럿 생겨났다. 김 대표는 장학금 지원이 목마른 학생들에게 '생명줄'과 같다고 표현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경제적 이유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을 학생들에게, 그 지원은 실제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었다 바다이야기게임기 . 선행은 장학 사업에만 머물지 않았다. 김 대표는 세금바로쓰기 운동본부와 한마음후원회의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3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한마음후원회는 노인 반찬 봉사, 장학금 지원, 불우이웃 돕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바람개비 운동 소속 국수봉사단과 나래봉사단에도 참여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이름이 닿는 곳마다 크고 작은 선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자비는 생명이 있어 좋다" 그의 봉사는 단순한 금전 지원의 차원을 넘어선다. 여성과 얽힌 억울한 범죄를 당한 청년, 보이스피싱으로 거금의 빚을 지게 된 가정주부. 그는 이처럼 제도의 그물망 밖으로 떨어진 이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도움을 줬지만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구하고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단호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가 수십 년에 걸쳐 다듬어온 선행의 철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개인적으로 사랑은 이별, 평화는 전쟁이라는 상반 개념이 있지만, 자비는 생명이 있어 좋아한다. 불살생 등 하지 말라는 행위를 하지 말고, 반대로 해야 할 행위를 하면 우리 사회가 이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삼가고, 해야 할 것을 실천하는 것. 단순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었다. 강원도의 한 청년이 질통을 지고 현장을 누비던 시절부터, 포항의 한 하숙방에서 라면 한 박스의 온기를 받던 순간까지. 그 모든 시간이 쌓여 오늘의 김민철을 만들었다. 사랑은 사랑을 옮겨 담는다. 그 명제를 그는 수십 년의 삶으로 증명해 왔다. 망 밖으로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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