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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헌책방 소소책방의 조경국 대표는 ‘진주문고 키드’다. 지금껏 책을 가까이하게 만든 에너지의 8할은 수시로 드나들던 진주문고에서 얻었다. 그가 2013년 소소책방을 연 이후 지금까지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가 물심양면으로 응원했다. 조 대표가 여 대표와 함께 진주문고 40년을 정리해 〈지역의 섬돌〉을 펴낸 것은 이처럼 오래 쌓아온 관계의 힘이다.
‘청년 여태훈’이 경상국립대학교 앞에 인문사회과학 서。 ‘개척서림(진주문고 전신)’을 연 것은 1986년. 1988년 장소를 옮겨 개척서림이 지역 사람들의 문화 거. 책마을이 되었다. 회원제로 운영한 이 복합문화공간에서 여러 문화 행사를 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직접 찾아가 강연자를 섭외했다. 그때 소식지 〈섬돌〉을 발간했다. ‘섬돌’은 집 앞뒤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놓은 디딤돌을 뜻한다. 1992년 중형 규모의 종합 서。 진주문고로 확장하고는 소식지 〈책과 삶〉을 펴냈다. 지역공동체의 문화 잡지 역할을 했다. 한때 사라져가는 지역의 기억을 책으로 펴내는 지역 출판사 ‘펄북스’를 설립해 운영했다.
창립 40년을 맞이한 진주문고 본。의 모습. 지역의 문화 거. 역할을 해왔다. ⓒ시사IN 조남진
진주문고는 평거동 본.을 포함해 네 군데 매장을 갖춘 진주의 대표 서。으로 성장했지만 부침을 겪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지역민들이 이자도 차용증도 없이 10만~100만원 상당의 선도서 구매권을 샀다. ‘진주의 어른’ 김장하 선생이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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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누구라도 와서 머물고, 생각을 나누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 진주문고는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
2002년 진주 지역의 한 공연에서 만나 인연을 맺어온 고(故) 허수경 시인은 ‘진주라는 곳’을 썼다. ‘눈물 많은 시인이 있던 곳/ 빛 많은 사람이 있는 곳/ 그 안에 작은 서。 하나 사람을 모으는 집을 짓는 곳’이라고 적었다. 여태훈 대표의 중고교 동창 강성호(하동책방 책방지기)를 비롯해 진주문고 관계자들의 회고를 읽으며, 나는 ‘우정의 공간’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진주문고의 40년, 진주 사람들이 축하하고 자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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