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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의령 지정면 성산리 가는 길.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고 남강의 찰랑이는 물길은 죽 뻗은 드라이브 길과 평행으로 달린다. 이 길을 따라가면 곽재우 의병장이 왜적을 맞아 싸운 첫 승전지인 기강전적지와 장군의 공을 기리는 보덕각이 있다.
그리고 나란히 바로 옆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한 손인갑과 그 아들 손약해의 정신을 기리는 쌍절각을 만난다. 화창한 가을, 두 비각은 400여 년 전과 다름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남강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곽재우 장군 전승을 기념하는 ‘보덕각’
의병 부자의 정신을 잇는 ‘쌍절각’
기강나루 언덕 위 팔작지붕 목조와가 보덕각
‘홍의장군 곽선생 공덕 잊지 않겠다’ 불망비도
보덕각 10m 옆에 위치한 맞배지붕 와가 쌍절각
의병 손인갑과 그의 아들 손약해 부자 충절 기려
낙동강으로 이동하는 왜군 선단을 궤멸시킨 곽재우 장군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보덕각.
의병 손인갑과 그의 아들 손약해의 정신을 잇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쌍절각./김홍섭 소설가/
◇보덕각
의령 보덕각은 지정면 성산리에 있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보덕각’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 ‘의령 보덕각(宜寧 報德閣)’으로 변경되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낙동강 수로를 따라 이동하는 선단을 궤멸시킨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전승을 기념하는 비각으로, 기강나루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본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목조와가로 영조 15년(1739년)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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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당 곽재우 장군은 정암진 도하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대승함으로써 경상우도를 방어하였고 기강을 중심으로 군수물자와 병력을 운반하는 적선을 기습하여 적의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왜군이 계획한 호남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
쌍절각 가는 낙동강변 드라이브길
당시 전쟁 초기 대승을 거두며 전격전을 펼쳐나가던 일본군의 주력군은 아주 빠르게 한성 인근까지 북진했다. 주력군이 북진함에 따라 경상도에 남은 일본군 병력은 보급물자 확충을 위해 약탈하기 시작했다. 조선군의 전력도 경상도에서 대부분 이탈한 상태여서 남아있는 일본군은 전투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그들의 약탈은 양민과 관아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자행된다.
고향에서 은거하며 지내던 곽재우는 포악한 일본군의 행태를 접하고는 4월 22일 평소 알고 지내던 장정 10여 명과 노비를 합쳐 의병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의 무장 상태는 매우 빈곤했고, 당시는 추수기도 아니었기에 군량을 보충할 수단이 부족했다. 결국 초계와 신반현의 관아를 뒤져 무기와 군량미를 확보한다. 곽재우는 일본군의 보급로를 노렸다. 해당 지역은 따라서 경상도로의 보급에 상당한 이.을 가지는 곳으로 낙동강 본류와 남강이 만나는 지금의 기강나루 지。이다.
기록에 따르면 5월 4일에는 일본군의 수송선 3척을 부관 4명을 이끌고 쫓아버렸다고 하며, 5월 6일에 수송선 11척이 등장하자 의병 13명을 이끌고 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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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일로 곽재우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곽재우는 의병부대를 모집한 이후 첫 승리를 거두었지만, 과정이 어쨌든 간에 나라의 쌀과 무기를 관아에서 허락도 없이 가지고 나와 사용한 것은 사실이었다. 경상우병사 조대곤이 곽재우를 도적으로 오인하고 체포령을 내렸다. 놀란 곽재우는 일단 목숨은 건져야 하니 지리산으로 숨으려 했다고 한다.
보덕각 팔작지붕의 화려한 단청.
다행히 이때 학봉 김성일이 곽재우의 전후 사정을 고하여 곽재우 의병대의 행동을 승인해 주게 된다. 이후 이들이 가는 관아나 고을에서 합법적으로 군량이나 무기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곽재우는 정암진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다.
보덕각 내에는 곽재우 장군의 불망비가 있다. 비 앞면에는(有明朝鮮國紅衣將軍忠翼公郭先生報德不忘碑)라고 새겨져 있으며(유명 조선국 홍의장군 충익공 곽 선생 보덕 불망비)’라 적혀 있어 공덕을 잊지 않겠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곽재우 장군의 행적과 곽 장군과 함께 싸운 열일곱 장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비의 오른쪽 면에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오늘날 육군참모총장) 채제공이 비문을 짓고, 김해 선비 배동건이 써서 정조 9년(1785년) 을사년 3월에 빗돌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보덕각과 쌍절각 표지석.
◇쌍절각
보덕각에서 도로 따라 10여m쯤 간격을 두고 쌍절각이 있다. 쌍절각은 임진왜란 당시에 왜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손인갑과 그의 아들 손약해의 정신을 잇기 위해 그 후손들이 세운 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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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절각은 임진왜란 당시 합천에서 의병장으로 진군했던 손인갑(孫仁甲, 1544~1592)과 그의 아들 손약해(孫若海, 1565~1592) 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정려다. 성주, 무계, 현풍, 초계 등지에서 많은 공을 세웠고 이를 인정받아 동래부사에 임명된 손인갑. 그러나 부임을 앞두고, 초계 마진 전투에서 왜군을 쫓다 목숨을 잃게 되었고,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손약해는 남은 병사들을 모아 전쟁터로 뛰어들었으나 아들 역시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게 되었다고 전한다.
쌍절각 맞배지붕의 화려한 단청.
쌍절각은 광해군 원년(1609)에 후손들의 거주지였던 봉수면 신현리에 세워졌으나 1943년 5월에 임진왜란 전적지인 이곳으로 옮겨왔다. 자연석의 주초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며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와가이다. 현재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5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기강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처음 군사를 일으켜 전승을 올린 중요한 곳이다. 지정면 성산리(城山里) 소재지에서는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인데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되는 지역이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의 의병이 왜적을 무찌른 전승지로 유명한 거름강나리(기강나루, 岐江津)가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성산이란 지명보다는 기강나루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기강전적지는 의령읍 내에서는 조금 떨어진 지정면 성산리에 위치해 있으며, 일명 거름강, 갈림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의 맞은편은 창녕군 남지읍이며, 남강 오른쪽은 함안군 대산면으로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보덕각과 쌍절각. 두 비각은 앞면이 확 트인 기강전적지를 한눈에 바라보는 남강 도로변에 세워져 흐르는 낙동강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념하는 ‘보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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