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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그림=손웅익
한여름에 성북동 일대를 답사하느라 땀을 한 바가지나 쏟았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로를 따라 오르는 코스다. 성북동은 한양도성의 북쪽에 있는 동네고 혜화문 바로 동쪽에 동소문동이 있다. 여기 한성대입구역은 삼선교 역으로도 불린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에 '삼선교'라는 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혜화문 남쪽으로는 흥인지문 방향으로 낙산이 있다.
성북로 시작 지。에 나폴레옹제과. 본。이 있다. 태극당과 함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과.인데 '나폴레옹'을 명칭에 사용한 내력이 궁금하다. 성북로를 따라 작은 가게들이 길 양측에 죽 늘어서 있다. 대부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고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식당도 많다.
10분쯤 걷다 보면 도로 옆 작은 정원에 조지훈 시인의 집터인 '방우산장' 조형물이 나온다.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시인이 자주 만나던 곳이라고 한다. ㄱ자 모양의 콘크리트 조형물이 있고 그 옆으로 높은 단 위에 나무 의자를 몇 개 늘어놓았다. 단이 높아 오르기도 힘들고 차가 다니는 도로 옆에 엉뚱하게 설치된 의자라서 앉아 있기도 민망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을 붙인다 해도 사람들이 외면하는 상징조형물은 자칫 흉물이 될 수 있다.
조지훈 시인의 집터 건너편 좁은 골목 안에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 최순우 옛집이 있다. 1930년대 지어진 아담한 한옥이다. 지금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시민의 성금으로 사들여 관리 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큰 향나무와 우물이 있는 마당이 인상적이다. ㅁ자 모양의 아담한 집 주위로 정원을 잘 가꾸었다.
최순우 옛집을 나와 성북로를 건너면 선잠단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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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인 서릉 씨를 누에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 선잠박물관도 있다. 누에 애벌레가 자라서 스스로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되고 그 번데기가 나방이 되어 다시 알을 낳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니 생명은 참 신비롭다.
선잠박물관을 지나 골목을 오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나온다. 간송 선생의 문화재 수집 이야기는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일제 강.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모으고 지켜낸 수많은 문화재 수집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미술관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박길룡이다. 일제강。기 시절에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 설계에 참여했고 종로의 화신백화.을 설계했다. '예술가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대학로에 남아있는 서울대 문리대 본관의 설계자다. 간송미술관은 겉모습이 단순하고 색상이 담백하다.
간송미술관을 나와서 성북로를 조금 더 오르면 길 건너에 덕수교회가 보인다. 덕수교회 옆으로 들어가면 언덕 위에 조선 말기에 마포에서 새우젓 장사로 큰돈을 번 이종석 별장이 있다. 지금은 덕수교회의 수양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한옥이다. 별장으로 지어졌기에 한옥의 전통 배치를 따르지 않았다. 만석꾼이라고 해서 만석을 현재가치로 따져보니 농사 1년 매출이 50억원 정도다.
성북로를 조금 더 오르면 심우장 안내 팻말이 나온다. 오래된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주 좁고 가파른 골목을 한참 오르다 보면 담장에 태극기가 꽂힌 기와집이 나온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이다.
심우장에 대한 한용운의 시가 있다. '일을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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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잃을 씨 분명 타 하면 찾은들 지닐 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니.' 소는 불교와 밀접하다. 소와 동자 그림인 십우도를 그려놓은 사찰 대웅전이 많다. 심우도라고도 하는데 동자와 소를 등장시켜 10단계의 참선 수행 과정을 묘사한 탱화다.
심우장에서 참선과 소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자료를 찾아보니 만해 한용운의 필명 중에 소를 키운다는 '목부(牧夫)'도 있고 소를 잃어버렸다는 '실우(失牛)'도 있다.
최순우 옛집 추녀에 달려있는 소방울 풍경 /그림=손웅익
갑자기 박두진의 집터인 '방우산장' 생각이 났다. 박두진의 호가 '방우(放牛)'다. 방우는 마음속에 소 한 마리를 키우면 직접 소를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최순우 옛집 추녀에 풍경으로 소방울이 달려있었다.
성북동 답사를 마치고 우연히 성북동과 소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았다고 했더니 아내가 한마디 했다. "과거에는 낙산에서 소를 키웠다고 하던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조선시대에 낙산 일대에 왕실전용 목장이 있었고 내의원에서 직접 소젖을 채집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답사는 내가 소를 찾아 참선 수행에 나선 동자가 된 것 아닌가.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한양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해 온 환경·생태 전시 설계 전문가로 코엑스아쿠아리움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가의 여행스케치>, <건축가의 아침산책>, <작은집이야기> 등이 있으며, 일상에서 접하는 건축물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 。차 잊혀가는 마을과 도시의 풍경을 스케치와 글로 남기는 작업을 지속하며 도시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아 있기도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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