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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새벽 3시 40분, 여수에서 승용차를 몰고 지리산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를 마치고 등산 가방과 스틱을 챙겨 친구들이 기다리는 휴게소로 올라갔다. 휴게소 안은 한밤중에 서울에서 달려온 등산객들로 가득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밤 10시 30분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단풍 산행에 나선 사람들이다. 삼삼오오 모여 라면이나 간식을 먹으며 새벽 산행을 앞두고 몸을 풀고 있었다. 부모를 따라 천왕봉에 세 번째 도전한다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앳된 얼굴도 보였다. ▲  지리산 뱀사골 단풍 ⓒ 양진형 10년 만의 야간 산행, 안갯속으로 우리 일행은 새벽 4시쯤 휴게소를 나와 본격적인 야간 산행을 시작했다. 한 친구는 야간 산행이 생전 처음이라며 "오늘 아주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도 헤드랜턴을 켜고 밤길을 걸어본 건 10여 년 만이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시절에는 서울 양재에서 밤 10~11시쯤 산악회 버스를 타고 새벽 4~5시쯤 들머리에 닿곤 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새벽 공기, 그리고 가파른 능선을 힘겹게 올라 정상에서 맞는 일출이 그 모든 피로를 잊게 했다. ▲  헤드랜턴을 켜고 지리산 야간산행에 나선 사람들 ⓒ 양진형 하지만 이날은 그런 기쁨을 누리기 어려웠다. 노고단 입구까지 이어지는 널찍한 등산로는 운무에 잠겨, 헤드랜턴 불빛이 지나간 자리가 뿌연 터널 같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 애초 계획했던 노고단 정상 왕복은 포기했다. 노고단 삼거리에서 주능선으로 들어서자 걸음은 더 느려졌다. 젖은 돌이 미끄러워 자칫 잘못 디디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  지리산 돼지령 ⓒ 양진형 일출은 놓치고, 정상부 단풍은 말라 있었다 산행을 시작한 지 두 시간여 만인 새벽 5시 55분에야 돼지령(1370m)에 도착했다. 첫 번째 목적지인 반야봉까지는 3.7km가 남은 지.이었다. 어둡던 하늘은 임걸령을 지나면서 조금씩 밝아졌다. 다빈치게임다운로드 그 무렵 우거진 나뭇가지와 회색빛 구름 사이로 붉은 해가 아주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고 하는데, 나는 일출을 보지 못했다. 날이 밝자 능선 좌우의 단풍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잎이 제대로 물들지 못하고 말라죽은 나무가 태반이었다. 올해 지리산 정상부의 단풍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  반야봉 정상에서 지리산 노고단 방향을 바라본 모습 ⓒ 양진형 반야봉(1732m)에 올랐지만 안개 탓에 지나온 노고단 능선과 성삼재~만복대~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은 보이지 않았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구름을 밀어내는 기세만 거셌다. 정상 주변은 어느새 겨울 채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키 낮은 관목들은 잎을 모두 떨구었다. ▲  반야봉 하산길 ⓒ 양진형 37년 전 아내와 오르던 길, 이번엔 함께 반야봉에서 전남·전북·경남의 경계인 삼도봉으로 내려섰다. 여기서 화개재까지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어림잡아 300~400개의 계단이 이어졌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오래전 추억이 떠올랐다. 1989년 이맘때, 아내와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 뱀사골~피아골 산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배낭에 쌀은 물론 김치와 반찬거리, 심지어 물통에 텐트와 버너까지 챙겨 메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뱀사골에서 계곡을 따라 9km를 올라 삼도봉에 오르는 길이 그야말로 힘들었다. 지금처럼 데크가 없어서 가파른 오르막을 지그재그로 오르던 기억이 난다. ▲  지리산 삼도봉~화개재 하산길(지난해 9월 촬영) ⓒ 양진형 그렇게 피아골 삼홍소(三紅沼)까지 가서 텐트를 치고 1박을 했다. 아내는 불안했는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새벽녘에 "무당이 굿하는 소리가 난다"며 나를 깨웠다. 우리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낯선 밤을 지새웠다. 그 아내가 37년이 지난 오늘은 일행과 보조를 맞춰 하산길을 거뜬히 걷고 있었다. 신천지게임랜드 뒤따라 걸으며 지금까지 건강하게 이 길을 다시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7부 능선 아래에서야 만난 단풍... "예년만 못했다" 화개재에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가 심하지 않고 탐방로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동안 단풍은 보이지 않았고, '단풍 산행'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3km쯤 내려와 산의 7부 능선 아래에 이르러서야 단풍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뱀사골 7부 능선의 단풍 모습 ⓒ 양진형 그런대로 볼 만은 했다. 간장소부터는 울긋불긋한 나무가 늘었고, 절정의 단풍을 보려고 뱀사골에서 올라온 사람도 많아서 오가며 옷깃이 스칠 정도였다. 병풍소처럼 수량이 풍부한 곳에서는 어김없이 대포 카메라를 든 사진가들이 단풍을 담느라 한창이었다. ▲  뱀사골 병풍소 지나 계곡 단풍 ⓒ 양진형 하지만 예년만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선홍색 단풍은 드물었고, 제대로 물들지 못하고 노랗게 멈춘 잎이 많았다. 게다가 날씨가 차가워지자 푸른 잎을 그대로 떨군 나무도 적지 않았다. 곱게 물들 겨를도 없이 잎이 지는 것이다. 이상기온 탓일까. 걷는 내내 지구 온난화가 단풍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  뱀사골 선홍빛 단풍 모습 ⓒ 양진형 직장 생활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낸 친구는 "우리나라 같은 단풍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아름답다"며 감탄했다. 그래서인지 산행 내내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띄었다. 아내에게 "올해 지리산 단풍에 100。 만.에 몇 .을 주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처음에 60.이라고 하더니 이내 70.으로 올려 불렀다. 내 생각도 같았다. 택시기사가 말하는 '3년째 망한 단풍' 뱀사골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해,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 간밤에 성삼재에 세워둔 차를 가져오기로 했다. 친구들은 와운마을과 천년송을 둘러보고 내려오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가는 길에 70대 중반의 남원 택시 기사에게 올해 지리산 단풍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알라딘릴 . 지리산 등산객들의 요구로 도로를 따라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람이다. ▲  뱀사골 와운마을 천년송 ⓒ 양진형 그는 "최근 3년간 지리산 단풍은 망했어요. 단풍이 좋을 때는 뱀사골에서 성삼재로 오르는 길은 물론이고 성삼재~노고단 길도 울긋불긋 참 좋은데, 올해도 비가 오지 않아서 단풍도 송이버섯 농사도 망쳤어요"라고 말했다. 식당 손님도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현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의 체감이지만, 내가 걸으며 본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제를 바꿔 지리산에 산다는 곰 이야기를 물었다. "지리산에 곰이 100마리쯤 산다고 하던데, 직접 보신 적 있으세요?" 그는 "직접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남원에서 등산객을 태우고 정령치를 넘어오다가 도로를 건너는 곰과 마주쳤다는 것이다. 재빨리 휴대전화로 곰을 찍어 이튿날 국립공원 관계자에게 보여줬더니 상당히 큰 개체라고 했다고 한다. 어떤 여성 등산객은 곰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줬다며 "참, 담력이 대단한 분"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행히 지금까지 곰이 등산객에게 해를 끼친 일은 없다고 했다. 성삼재에서 차를 몰고 반선마을로 내려오며 생각했다. 37년 전 그 밤, 굿 소리에 잠 못 이루던 아내가 오늘은 단풍에 .수를 매기고 있다. 올해 지리산 단풍은 아쉬웠지만, 그 길을 아내와 친구들과 함께 걸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오늘 산행에 후한 .수를 주고 싶었다. 단풍은 70。, 산행은 90.이다. ▲  백무동탐방지원센터 인근의 단풍 모습 ⓒ 양진형 .탐방 코스 : 성삼재~임걸령~반야봉~삼도봉~화개재~뱀사골 (난이도 중상, 휴식 포함 8시간) .교통 : 서울 심야 고속버스로 성삼재까지 가거나 승용차로 성삼재에 주차. 뱀사골탐방지원센터 ~성삼재주차장 택시비 4만 원 .식사: 뱀사골탐방지원센터 인근 반선마을 산채정식 1만 5천 원 .준비: 헤드랜턴과 여분의 건전지, 미끄럼에 대비한 스틱과 등산화. 야간 입산 가능 시간은 출발 전 국립공원공단 공지를 꼭 확인하세요. 양진형 반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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